예식장비ㆍ위자료 등 지급 판결
지난해 4월 한 연인의 결혼식. 신부 B씨는 웨딩드레스는 입었지만 결혼이 내키지 않았다. 식을 치르는 내내 시무룩했고 미국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나면서도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신랑 A씨와 대화를 거부했다.
신혼여행 첫날 B씨는 하와이에서 혼자 쇼핑을 하고 밤 늦게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서운했던 신랑이 술만 삼키다 호텔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자 B씨는 호텔을 나가 다음날 오전에야 돌아왔다. 이후에도 B씨는 혼자 쇼핑만 했고, 귀국 전 날에는 아예 신랑과 말을 섞지 않고 밤을 따로 보낸 뒤, 신랑과 떨어진 비행기 좌석에 앉아 귀국했다.
신랑을 ‘투명인간’ 취급한 B씨는 연애시절부터 남편 A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12년 9월 신랑 여동생의 소개로 2~3개월 사귀다 이별을 통보했지만 A씨가 9개월 넘게 구애하자 다시 만났고 결혼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A씨가 부모 지원을 받아 서울의 한 아파트를 임차하자 B씨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직장 생활을 오래하고도 겨우 전셋집을 얻고 그마저 부모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결혼 한달 전에는 결혼취소 통보를 했지만 양가 부모의 설득으로 없던 일이 됐다. 이렇게 해서 B씨는 결혼식을 올렸지만, 신혼여행에서 A씨와 사이가 더 벌어진 것이다.
귀국 뒤 둘은 서로 “혼인 관계는 끝났다”는 취지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고, 참다 못한 A씨는 한 달 뒤 B씨를 상대로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 권태형)는 “사실혼 관계 파탄의 책임이 B씨에게 있다”며 손해배상액 850여만원(예식장비, 드레스 대여비, 신혼여행비 등)과 위자료 1,000만원 등 총 1,850여만원을 A씨에게 지급할 것을 명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가 B씨의 마음을 얻으려 결혼 한달 전 백화점에서 사준 200여만원의 샤넬 핸드백도 돌려주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의 경제력과 성격 등으로 혼인을 고민하다 스스로 결혼 결정을 했음에도 신랑이 마음에 안 든다고 대화도 거절하고 신혼여행에서 따로 다닌 것은 혼인관계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고 갈등 해결의 길을 봉쇄한 것”이라고 밝혔다. B씨는 “결혼식 전 파혼을 요구했는데 A씨가 매달려 원치 않는 결혼을 한 만큼 사실혼 파탄 책임은 그에게도 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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