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밴드로 나왔는데 연주 실력 많이 아쉬워
변신 자체 비난할 일인가 하는 밴드 연주자들도 있어
핸드싱크 권하는 음악방송, 기획사들이 부담 없이 아이돌 밴드 만드는 원인
그룹 원더걸스(사진)의 ‘밴드 변신’을 두고 청취자와 가요계 관계자들 사이 갑론을박이 뜨겁다. 7년 동안 춤을 추던 걸그룹이 악기를 메고 연주를 한다고 나서 다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기대했다. 막상 원더걸스의 연주 모습이 공개되고 나니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재미있는 변신이란 의견이 있고, 악기는 액세서리 수준이라며 원더걸스의 밴드 변신을 ‘과대포장’이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 3일 새 앨범 ‘리부트’를 내고 활동을 시작한 원더걸스를 계기로 아이돌 밴드의 연주실력에 대한 논의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라제기기자(라)=원더걸스의 밴드 무대는 어떻게 봤나?
강은영기자(강)=지난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컴백 첫 주 방송을 봤는데, 댄스그룹이 밴드라는 설정으로 무대 퍼포먼스를 벌이는 정도 밖에 안보였다. 밴드가 아닌 밴드 콘셉트로 활동한다는 느낌이다. 유빈이 드럼 연주하는 게 제법 폼은 나 보였는데, 멤버들의 연주 실력은 많이 아쉬웠다.
양승준기자(양)=‘아이 필 유’란 노랜 좋은데, 왜 이 음악을 밴드 음악으로 들고 나왔을까라는 물음이 생겼다. 팝음악적인 느낌이 강해 밴드라는 연주 형식으로 보여주려 했는지가 잘 설득이 되지 않았다.
라= 걸그룹으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밴드란 형식을 찾은 게 아닐까. 원더걸스는 청중을 감동시킬 만한 가창력을 지닌 그룹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속 춤을 추며 무대에 설수도 없다. 새로움을 주기 위한 장식으로 악기를 활용한 것 같다. 춤을 췄던 아이돌의 밴드 변신 자체가 화제가 될 만한 이슈이고, 준비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 거리가 생겨 호기심도 줄 수 있다. 과연 원더걸스가 밴드로 나설 만한 실력이 있느냐를 따져볼 만하다.
양=밴드로 나왔는데 앨범 곡 녹음 연주는 전문 연주자들이 따로 했다. 진정한 밴드인가라는 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라=가수로 따지면 노래 녹음은 딴 사람들이 하고, 무대 올라와서는 노래 하는척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만약 이름 없는 밴드가 원더걸스 정도의 연주 실력으로 음반을 내고 녹음은 전문 연주인에 맡겼다면 과연 데뷔 자체가 가능했을까.
강=음반 녹음할 연주 실력이 안 되면 애초에 ‘밴드 콘셉트로 활동한다’고 발표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홍익대 앞 클럽에서 밴드로 활동하는 연주자들도 의견이 나뉜다. 원더걸스란 이름값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로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연주자가 있는 반면 원더걸스가 ‘톱밴드’(KBS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밴드 변신 자체를 그리 비난할 일은 아닌 거 같다는 연주자도 있다. 원더걸스가 출연한 ‘유희열의 스케치북’ 연주를 보고 멤버들이 악기 소리를 내는 톤이 아마추어 수준은 아니었다며 성장 가능성을 얘기한 기타리스트도 있다. 다만 원더걸스 멤버들이 티저 영상에서 각자 연주 실력을 뽐내는 장면에 비하면 기대에는 못 미쳤다는 의견은 공통적이다.
조아름(조)=정말 청중들이 바라는 게 원더걸스가 연주를 잘 하는 걸 바라는 걸까란 의문도 든다. 그냥 노래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강=물론 원더걸스에 원숙한 연주를 바라진 않지만 밴드로 나왔으면 기본은 해야 되지 않나.
라=현재 음악 생산과 소비가 잘못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예전에는 ‘가수라면 노래를 잘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기준이 무너진 것 같다. 아이돌에 뭘 바라는 데란 시선이 결국 ‘원더걸스 밴드가 연주 잘 하길 바랐어?’라는 식의 인식을 형성했다. 이러면 과연 음악 시장의 발전이 있을까.
양=확실히 각성은 필요한 시기다. 원더걸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돌 밴드 중에 과연 데뷔 앨범 음반 녹음 연주까지 한 밴드가 과연 있을까’란 얘기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강=KBS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를 보니 원더걸스가 직접 연주를 하진 않더라. 밴드로 나와 핸드싱크(음원을 틀어놓고 악기를 연주하는 척하는 것)를 하는 건 문제 아닌가.
양=현 음악방송 시스템 자체가 라이브 연주를 할 수 없다. 워낙 많은 팀이 출연하다 보니 악기 조율 등을 할 수 없어 핸드싱크를 되레 권한다. 이런 환경이 연주 실력이 안정적이지 않아도 데뷔 할 수 있는 기이한 현실을 만든 요인 중 하나라 생각한다. 방송에서 실제로 연주하지 않아도 되니 기획사 측에선 큰 부담 없이 아이돌 밴드를 내보낼 수 있다. 결국 악순환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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