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침해·조망권 제한, 필로티와 수목원 조성해 극복
지하 다락방 등 프리미엄도 제공… 공간활용 혁신설계 속속 선봬
①질문 하나. 사생활 보호가 되는 층은?
②질문 둘. 조망이 뛰어난 층은?
③질문 셋. 넓은 테라스를 둘 수 있는 층은?
아파트 꼭대기 층이 답일 까. 보통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정답과 거리가 가장 멀어 보이는 ‘아파트 1층’이 이러한 장점들을 ‘낚아 채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저층의 단점(사생활 침해, 일조권 조망권 피해 등)은 보완하고 장점(공간 활용)은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혁신 설계를 속속 선보이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아파트가 한국에 정착한 이래 줄곧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아온 1층이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
1층 인기는 ‘필로티’에서 시작
아파트 1층의 인기를 주도한 건 단연 ‘필로티’다. 필로티는 건물 전체 또는 일부를 기둥으로 들어 올려 지상에서 분리시켜 만든 공간. 기존 1층 집을 2~3층 높이로 끌어올리고 그 빈 공간을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개념을 처음 도입한 이는 스위스 출신의 현대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다. 제 기능을 하지 않는 건축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20세기 초 1층 외벽을 벌레와 습기, 열기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뚫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수를 위한 주차장이나 휴식처로 사용했다.
이처럼 실용성을 높인 필로티 방식은 아파트 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특히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 짓는 아파트는 너나 할 것 없이 필로티를 단지의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이달 평택 세교지구에서 분양하는 2,807가구 규모의 ‘힐스테이트 평택’에는 필로티 공간에 ‘맘스라운지’(보호자 대기공간)가 들어선다. 어린 자녀들이 놀이터 등에서 놀 때,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릴 때 입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소통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현재 분양 중인 ‘시흥 배곧 한라비발디 캠퍼스 2차’는 1층 필로티마다 커뮤니티 시설 ‘헬로우 라운지’를 설치했다. 여기에는 무인택배시스템부터 회의 및 학습공간인 ‘헬로쌤’, 대형 빨래를 할 수 있는 ‘코인세탁실’ 등이 배치돼 있다. GS건설이 분양한 ‘경희궁 자이’는 필로티를 전통 한옥의 현관 느낌이 나도록 설계하고 빈 공간은 대청마루로 꾸몄다.
1층의 진화는 계속된다
대다수 1층 입주민들은 아래층의 층간 소음에서 자유로운 대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가령 현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소음을 견뎌야 하고 누가 엿 볼 까봐, 혹은 도둑이 들 까봐 찜통 더위에도 현관문과 베란다를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 있어야 한다. 또 사생활 침해가 염려돼 한낮에도 암막 커튼으로 거실과 각 방을 가리기 일쑤다. 이런 상황이라면 일조권이 보장되는 남향이라도 빛을 보는 건 ‘그림의 떡’일 수 있다.
이 치명적 약점들을 걷어치운 아파트들이 최근 늘고 있는데 이번 달과 다음달 각각 분양을 앞두고 있는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 옥수’와 ‘e편한세상 신금호’가 대표적이다. 대림산업은 자체 개발한 ‘오렌지로비’를 이들 단지에 도입했는데 1층 세대 입구와 공동 현관을 분리한 게 특징이다. 저층 입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내부 설계에 공을 들여 외부 소음 등의 단점을 커버한 단지도 나왔다. 지난해 9월 서림이 분양한 구미의 ‘오태명당 풀리비에’는 1층 가구를 위해 ‘지하 다락방’을 만들었다. 안방 발코니에 작은 출입구가 있고, 그 밑으로 내려가면 전용면적 10~19㎡ 규모의 ‘지하 스페셜룸’이 나온다. 이런 특화 설계 덕에 분양 당시 1층 가구가 제일 먼저 ‘완판’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화성개발이 최근 분양한 ‘삼송화성파크드림’은 사생활은 보호하고 조망권은 살리기 위해 1층 앞에 수목원을 조성했다. 아파트 1층에 테라스를 추가로 구성해 개인 정원 등을 꾸밀 수 있게 하는 것도 유행을 넘어 대세가 됐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아무리 계약률이 좋아도 마지막까지 해결이 안 되는 게 1, 2층 같은 저층인데 이런 잔여 물량을 빨리 털어내기 위해 건설사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내 집 마련을 위한 실수요자 입장에선 저층이 공간 및 비용 대비 효율적일 수 있으나 환금성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소음, 사생활 침해 등 근본적 문제가 다소 해결 되더라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 만큼 자신에게 이득인지 꼼꼼하게 따져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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