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로 남북관계가 다시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긴장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북한이 남측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강경일변도의 적대시 정책으로 돌아선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6ㆍ15 남북공동행사와 광복 70주년 공동행사를 무산시킨 데 이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친서로 이희호 여사를 초청했음에도 면담조차 하지 않아 남측 인사와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드러냈다. 얼마 전에는 느닷없이 표준시를 변경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스스로 고립을 가속화하는 기이한 행동까지 벌이고 있다.
북한의 도발 의도는 분명하다. 긴장을 고조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 테이블로 남측과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어제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조선반도에서 긴장이 격화하는 것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며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한 논평에서도 잘 드러난다.
북한의 지뢰도발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으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중대사안이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이 지경으로까지 만든 우리 당국의 책임 역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올 들어서만 해도 여러 차례 북한의 도발 징후가 잇따랐고, 또 정작 도발했을 때는 마땅한 대응수단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긴장국면을 방치해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교류에 진척이 없는 것은 정치적 환경 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군사적 도발만큼은 막을 수 있도록 위기지수를 관리했어야 한다. 미국이 여전히 북핵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고, 중국도 북한과의 냉랭한 관계가 1년 이상 계속되면서 지렛대를 상실하고 있어 우리의 책임과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남북관계가 더 험악해질 악재는 앞으로도 줄줄이 남아 있다. 당장 17일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예정돼 있고, 노동당 창당 70돌인 10월10일을 전후해 북한의 4차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 우려도 크다. 지뢰도발에 대한 우리측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북한이 “최고존엄 모독”이라며 “조준격파하겠다”고 격렬히 반발해온 터여서 어떤 추가 도발을 해올 지도 알 수 없다.
추석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관광 재개 등 정부가 추진하는 교류는 사실상 물 건너 갔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가 남북관계를 개선할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기대도 접어야 할 상황이다. 남북관계의 전향적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더라도 도발을 억제하고 군사적 긴장수위만큼은 더 높아지지 않도록 위기대응 능력만큼은 정부가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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