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행 택한 김명복ㆍ강희동씨, 포로시절 떠돌던 남녘 곳곳 돌아봐
"이념 없는 편한 곳에 살고 싶었다… 지금은 고향땅 한번 밟는 게 소원"
1954년 경남 거제도에 설치된 포로수용소의 북한군 포로는 세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북으로 돌아가든지, 남에 남든지, 고국을 떠나 중립국을 향하든지. 이때 남도 북도 아닌 인도와 브라질 등 중립국행 배에 몸을 실은 북한군 포로 80여명 중 18살 김명복과 25살 강희동이 있었다.
반세기도 훌쩍 넘는 동안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고향산천을 그리다 백발에 이른 두 사람은 지난 7월 힘겨운 기억 찾기 여행에 나섰다. 경북 영천시와 부산시, 창원시, 거제시 등 포로 시절 떠돌았던 남쪽의 곳곳을 돌아보며 60여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비극을 되새겼다. 마지막일지 모른 두 사람의 귀향 여행은 카메라에 담겼고 ‘리턴 홈’(감독 조경덕)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고 있다.
전쟁과 조국에 대해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김명복(79), 강희동(86)씨가 10일 서울 자하문로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품어둔 만감을 털어놓았다. 모국어는 세월에 문드러져 두 사람의 한국말은 어눌했다. 그 서투름이 마치 그들의 얄궂은 운명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김씨는 브라질에 정착한 뒤 독일계 현지 여성과 결혼해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왔고, 강씨는 브라질에서 다시 미국으로 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목사로 일하며 오랜 타향살이를 견뎌왔다. 강씨는 간담회에서 당시 중립국을 택한 북한군 포로들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 참으로 평안한 땅, 자유로운 세계에 가서 새로이 생활을 개척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어요. 남과 북이라는 두 선택을 초월해서 이상적인 세상에 살고 싶었던 거지요.”
하지만 그 선택은 실향의 아픔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김씨는 “호랑이도 죽을 때면 자기 고향을 찾아간다는데 내 고향을 한번 찾아가서 보는 게 소원”이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고향에 가면 아버지를 제일 만나고 싶은데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라며 한숨 짓기도 했다.
두 사람은 61년 전 함께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하자마자 헤어졌다가 이번 귀국 여행에서 재회했다. 강씨는 “브라질에 간 포로 중에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동족과 나라에 대한 관계를 모두 끊은 포로가 있고, 경제적 곤란에 빠져 힘겹게 생을 이어간 포로도 있다”고 전했다. 당시 브라질행을 택한 북한군포로는 50명 남짓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모국 여행 중에 양평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80대 재향군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전쟁 당시 서로 총을 겨눴던 사이였으나 재향군인들은 김씨가 투항했던 장소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등 예상 밖으로 환대했다.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두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전쟁 때문에 다 어려서 고향 떠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빨리 통일이 돼서 북한 사람도 우리와 같이 열심히 해서 잘 살면 얼마나 좋아요.”(김명복씨)
조경덕 감독은 이들의 북한 방문까지 담아 영화를 완성할 생각이지만 북한 당국이 입북을 거부하고 있어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박준호 인턴기자(동국대 불교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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