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8월 11일 미국 LA 인근 흑인 거주지 와츠(Watts)에서 폭동이 일어나 6일 동안 34명이 숨졌고 1,032명이 다쳤다. 주 방위군과 경찰에 체포된 흑인은 3,438명이었다.
미국 현대사에서 인종간 집단 충돌은 목록과 개요만 정리해도 소책자 한 권쯤은 넉넉히 채울 만큼 빈발했다. 20세기 이전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전쟁서부터 시작해 미국사 자체를 백인과 흑인, 아일랜드계, 아시아계, 히스패닉의 대립과 갈등을 뼈대 삼아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와츠 폭동은 양상이 치열했고 피해가 컸다는 점 외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여러 폭동 가운데 하나였다.
와츠 폭동은 21살 흑인 청년의 음주운전에서 시작됐다. 그는 경찰의 정당한 단속에 적발됐고, 정당한 절차로 연행될 참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현장에 엄마가 달려 나왔다. 아들이 자신의 차를 몰래 몰고 나간 것도 모자라 음주까지 해서 적발된 데 격분한 엄마는 아들의 멱살을 쥐고 거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동안 참던 경찰이 끼어들어 아들을 경찰차에 태우려다 엄마를 밀쳤고, 가뜩이나 흥분한 엄마가 경찰에 덤벼들게 됐고, 웅성이던 흑인들이 동요하자 두려워진 한 경찰관이 권총을 뽑아 들었고…, 소문은 백인 경찰이 흑인 청년의 엄마를 모욕했고, 주변에 있던 임신부를 폭행한 것으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가 저 폭동이었다.
‘폭동’이라 불리는 거의 모든 사건에는 경제적 문제가 배후에 있다. 소수 인종(신분, 민족, 지역, 종교 등등)의 빈곤과 열악한 교육환경. 현실의 불평등에 앞서 그 불평등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제도적ㆍ문화적 차별. 그 차별이 어떤 계기, 예컨대 한 경찰관의 과잉 진압이나 모욕적 언사 등으로 가시화될 때 억눌린 분노가 폭발한다. 한 경찰관의 의도나 진압 당시 정황, 다시 말해 사적인 윤리나 이성적 법리적 판단은, 차별이라는 거대한 불의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무의미해지는 게 옳다는 게 아니라, 그러기 쉽고 또 대개 그래 왔다는 얘기다.
92년 LA폭동 때는 언론이 ‘소문’을 증폭시켰다. 당시 방송들은 로드니 킹이 폭행당하기 전 그의 난폭한 도주 장면과 백인 경찰 구타장면은 방영하지 않았다. 한인 상인 두순자씨가 주스를 훔친 흑인 소녀에게 총을 쏘는 CCTV 화면(그것도 1년 전 사건 자료화면)만 찾아내 방영했지, 소녀가 먼저 그를 폭행하는 장면은 삭제했다. 당시 언론에겐 흑인 차별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중요했고, 그 문제를 부각하는 일이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와츠 폭동의 소문이 잠복한 진실의 알레고리일 수 없고, 92년의 방송 왜곡이 현상 너머의 근원을 겨냥한 것이라 정당화될 수는 없다. 숨진 이들 중에는 그 차별의 피해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은 미국 사회가 자성하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됐다. 역사는 아이러니를 통해서도 나아간다. 그래서 옳다는 게 아니라, 그러기 쉽다는 얘기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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