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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전쟁은 거대 트라우마… 증오 말고 포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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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전쟁은 거대 트라우마… 증오 말고 포용을"

입력
2015.08.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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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편승한 좌우 갈등 분단,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시점

한국전쟁 때 테러로 아들 3명 잃은 농민의 가해자 용서 사례 소개도

北 여전히 전쟁 상처 머물러, 한반도 문제 해결 소명은 南에

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광복 직후 한반도 정세를 이야기하고 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광복 직후 한반도 정세를 이야기하고 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
6·25전쟁 당시 부산지역에서 붙잡힌 북한 인민군 포로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6·25전쟁 당시 부산지역에서 붙잡힌 북한 인민군 포로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광복 70년의 역사는 분단 70년의 역사다. 1945년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 강대국의 분할 점령으로 시작된 분단은 48년 체제를 달리한 남ㆍ북한 분단정부 수립으로 고착화됐다. 이어진 한국전쟁(50~53년)은 한반도에 이념을 기반으로 한 분단과 단절의 장막을 더 높이 세웠다.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된 광복의 의미를 분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유다.

한국전쟁 연구의 권위자인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해방 당시 좌파와 우파가 미ㆍ소의 분할 점령에 편승해 대결ㆍ갈등했던 몽매야말로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에 가장 냉철하게 맹성(猛省)해야 할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광복이 갖는 독립ㆍ열망ㆍ희망ㆍ긍정ㆍ기쁨 이런 측면과 동시에 분단으로 인한 비극ㆍ적대ㆍ부정ㆍ대결ㆍ절망이 지난 70년 역사에서 공존하고 있다”며 “이 중첩을 이성적이고 정확하게 해석해 내는 능력만큼 대한민국은 광복 70년을 넘어 미래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_광복을 오늘의 관점에서 돌아본다면 어떤가

“광복은 망국(亡國)이 없었다면 전연 불필요했다. 따라서 광복을 기리고 기뻐할 때는 망국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반드시 같이 가야 했다. 하지만 광복의 시점에서 당대 지도자들은 망국에 대한 성찰보다는 현재의 자기이념과 권력장악을 훨씬 더 중시했다. 이승만과 김일성,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 우파와 좌파, 남한과 북한이 단 한 번도 한 자리에 앉아 민족의 총의(總意)를 모으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전민족의 통합된 통일 독립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만남이 단 한차례도 없었고 대화도 하지 않았다. 미소의 가장 격렬한 이념 대결장이었던 2차세계대전 이후의 연합점령ㆍ분할점령 된 국가들 중에 이런 상상도 할 수 없는 바보스러움은 한국 이외에는 찾기 어렵다. 가장 통렬하고 가장 비극적인 단면이다. 당시의 11개 연합점령, 분할점령 국가들 중에 두 한국은 분단, 세계전쟁, 전후 분단을 모두 치르고, 게다가 현재까지도 분단된 유일한 나라다. 친러ㆍ친청ㆍ친일ㆍ친미파로 갈라진 결과가 망국이었음에도 또다시 자기이념, 자기가 추종하는 강대국을 좇아 분열의 길로 달려 나간 것이 망국에 못지않은 비극인 분단을 초래했다. 당대 지도자들의 무능과 편협함에 대해 준열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_민족 내부 분열이 분단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나.

“ 1945년 말과 46년 초에 벌어진 모스크바 결정을 둘러싼 신탁통치 대논쟁과 대(大)분열은 우리민족이 지금도 깊이 성찰해야 할 지점이다. 그전까지는 좌우 대결이 격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거치면서 우파에게는 ‘찬탁’이 반민족ㆍ친소ㆍ매국ㆍ악이 되었고, 좌파에게는 ‘반탁’이 반민족ㆍ친일ㆍ친미ㆍ매국ㆍ악(惡)으로 매도되었다. 이승만과 김구가 반탁운동 과정에서 친일파를 소생시키는 실수를 범한 건 사실이나, 우파를 친일파가 대표하는 것도 아니었다. 광기에 가까운 폭발이었고 집착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후 국제결정을 놓고 이토록 불구대천으로 내부에서 분열하지 않았다.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국제결정에 대한 깊은 사려와 내부대화가 절실했던 것이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미국과 소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미국과 중국의 대결 등 언제나 세계열강의 이익대결이 부딪히는 세계 문명과 열강의 핵심 경계국가이자 전초지역이었다. 따라서 16세기 임진왜란부터 시작해 19세기 청일ㆍ러일 전쟁, 20세기 2차세계대전 등 거대전쟁 이후에는 반드시 한반도의 분단 시도가 존재했다. 국제적 이익쟁투와 분할시도는 한반도의 상수인 것이다. 현재의 한반도 분단은 결코 민족 분단이 아니라 국제 분단이다. 때문에 내부 통합과 연대는 평화와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는 더더욱 필수적인 것이다.”

_남ㆍ북한이 서둘러 정부를 수립에 나선 것도 이념 때문이었나.

“이념이 수단이고 명분이었다면 권력장악은 목표이자 현실이었다. 권력장악을 위해 이념을 동원하다 보니 좌파는 우파를, 우파는 좌파를 배제했다. 상대이념을 후원하는 국가에 대한 적대도 강력했다. 민족주의자들은 소련을,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을 수용하지 않으려 했다. 민족주의자에게 소련은 한민족 내 공산주의자 보다 더 수용하기 힘든 존재였다. 소련은 러시아 시절부터 한반도에 대한 영토욕을 가진 ‘제국’이었고, 식민지 시절 민족운동을 분열시킨 원흉이라는 비판 의식도 컸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들이 소련을 미워했기 때문에 오히려 공산주의자와 타협점을 찾았어야 했다. 통일을 위한 현실주의적 인식의 결여다. 한반도의 국내 냉전이 세계 냉전보다 훨씬 앞서 갔던 연유이기도 하다. 연합점령ㆍ분할점령 상태에서도 내부 정치연합과 좌ㆍ우 연대를 통해 이념 대결과 민족 분단, 세계 냉전을 극복한 다른 국가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박 교수는 1994년 박사학위 논문인 ‘한국전쟁 발발과 기원’에서 수많은 사료 발굴을 통해 기존의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동시에 극복한 것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북한군 명령서 등의 자료를 통해 북한의 남침 사실을 증명해내면서 소모적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박 교수는 “분단과 한국전쟁은 이념대결이 첨예한 주제라서 당대 사료에 의해 정확하게 사실을 복원해야 한다”며 “사실이 진실로 확정되면 이념 논쟁도 중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_역사적 사실의 새로운 복원과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여전히 있나

“우선 대한민국 건국에 관한 부분이다. 건국 시점에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였지만, 사회ㆍ경제적으로는 결코 보수적이지 않았다. 건국헌법의 경제 조항들은 ‘균등경제’ ‘형평경제’를 지향했다. 사실상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삼균주의’를 그대로 수용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한인총회 회의록을 보면, 독립운동 시기 이승만도 같은 노선이었다. 초대 내각구성도 분단국가로서는 이념적으로 최대연합이라고 할 정도로 폭이 넓었다. 급진 공산주의를 제외한 4개세력의 연립정부에 가까웠다. 이승만은 보수진영을 대표했고, 신익희는 김구가 불참한 가운데 임시정부 세력을, 김성수는 국내우파와 토지세력을 대표했다. 조봉암은 개혁ㆍ진보세력을 대표했다. 냉전 하 분단국가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토지개혁과 농민포용을 성취해 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한국전쟁에서 농민들이 남한을 지지한 배경도 사실은 토지개혁의 성취가 기여한 바가 컸다.”

_김성수는 친일행적 논란이 있다.

“맞다. 그러나 광복과 분단의 문제는 이제 정의와 관용을 동시에 봐야 한다. 김성수 개인과 지주세력들은 균등경제를 지향한 건국헌법의 제정이나 이후 토지개혁에 강력하게 반대했어야 할 세력이지만, 신생 국가건설 노선으로서의 형평경제와 농민해방과 토지개혁을 수용했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 체제가 독재로 치달은 이후에도 김성수는 조봉암과의 연대를 추구했다. 지주해체와 소작농 해방을 통해 농민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포용했다. 또한 지주세력이 해체되면서 정부의 자율성이 굉장히 커졌다. 신생 국가발전의 결정적 토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토지개혁은 이승만을 위시한 조봉암ㆍ김성수의 공동 업적인 것이다. 거꾸로 말씀드릴 수도 있다. 조봉암이 건국과정에서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보수세력은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진보당 사건의 대법원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지 않고 있다. 이제 역사에 대한 포용적이고 융합적인 해석을 할 때가 됐다.”

박 교수는 한국전쟁의 인간적 비극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잠기며 말을 잘 잇지 못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우익 테러로 아들 셋을 잃은 전남 영광군의 농민 강내원씨가 자신을 가해한 사람을 용서하고 포용했던 증언을 설명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한 평범한 노인도 이렇게 자기희생과 용서의 절대 경지를 보여주는데,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해서 증오하고 적대하는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_한국전쟁의 상처는 극복 가능한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상처의 극복은 가능하냐 안 하냐의 문제를 넘는다. 그것은 현재의 인간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다. 상처와 비극에 계속 머물 수는 없는 실존적 인간 한계, 상처를 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비극의 건설적 기능’, ‘파괴의 창조적 역할’이라는 역설이다. 인간과 역사는 과거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한 만큼 발전한다. 한국전쟁은 역사의 영년(零年)이라고 불릴 정도로 완전파괴요 절대 트라우마였다. 상처가 클수록 치유에 많은 노력이 들어가지만, 그 치유노력과 성공의 크기만큼 인간과 세상은 다시 건강해지고 발전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인류사적 상처를 딛고 화해와 평화의 중심으로 거듭난다면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화해와 평화의 메신저가 될 것이다.”

_남북한 정부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지 않을까.

“북한은 여전히 한국전쟁의 유산에 머물러 있다. 전쟁을 수행한 최고지도부의 자녀가 3대 세습을 하고 있다. 한반도를 규정짓는 두 개의 안보체제인 정전체제와 북핵체제 모두 북한이 시작해 놓여졌다. 북한에 대한 증오와 배척도 중요하지만, 이미 세계의 보편적 시대 정신에서 탈락한 북한을 어떻게 평화롭게 국제 사회로 나오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소명은 남한에 있다. 문제는 남한이 그럴 능력을 갖췄느냐다. 남북 통일을 말하기에 앞서 남남통합도 선행돼야 한다. 진보 정부는 북한이 엄연한 독립국가로서 자기 이익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바탕으로 현실 논리에 따른다는 점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 보수 정부는 북한을 떼어놓고 배제하고 비판하고 적대하면 마치 민족 문제, 한반도 문제, 안보 문제를 해결했다는 자기만족에 빠지는 함정을 피해가야 한다.”

박 교수는 “진보ㆍ보수 모두 통일의 이중성을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남갈등 속에서 남북 통일과 통합은 불가능하다”며 “내부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과 복지, 화해와 통합의 실천이 가장 빠른 통일준비”라고도 강조했다.

_분단 70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남한의 연대와 통합 없이, 이토록 심각한 남남갈등과 이념쟁투 상태에서, 남북통일과 통합은 불가능하다. 내부 연대야말로 남북통일의 전제조건이며, 남북공존과 협력이야말로 한반도문제를 둘러싼 국제질서 변동에 지혜롭게 대응하기 위한 핵심요소다. 아울러 한반도 통일은 내적으로는 이중통일이고, 외적으로는 국제통일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남한과 북한은 민족ㆍ언어ㆍ영토의 측면에서는 재통일이 맞지만, 주권ㆍ국민ㆍ국가의 관점에서는 신(新)통일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민은 지금까지 사실상 두 국가에서 두 주권을 가진 두 국민으로 살아왔다. 통일의 열망과 추동력은 재통일 측면에서 오지만, 통일을 이룰 조건과 능력은 신통일 측면에서 주어진다. 따라서 재통일과 신통일을 분리하고 다시 결합하는 지혜만큼 분단극복은 현실화할 것이다. 그것은 곧 세계분단으로서의 한국 분단과 국제적 통일로서의 한국 통일을 인식하는 것과 직결된다. 우리가 얼마나 세계시민ㆍ세계국가로서의 자격을 갖추느냐, 거기에 한반도 분단 극복과 평화의 길이 달려 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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