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나눔재단서 프로그램 시작, 입소문 타면서 올해 경쟁률 20대 1
1기 출신은 연 매출 100억 성장도 "IT업종 치중 대신 맞춤형 지원을"
4일 서울 강남구의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반 손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너머로 통유리로 된 또 다른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66.1㎡ 남짓한 공간에 사무용 가구와 컴퓨터가 놓여 있다. 지문등록으로 출입을 통제했다. 이곳은 한국의 작은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KDB 스타트업 카페’, 유망한 스타트업들을 위한 공간이다.
‘카페 안 사무실’은 노트북PC 화면에 아이디어를 띄워 놓고 작업하는 청년들로 붐볐다. 20대 청년 이동준(25)씨와 이수언(23)씨는 ‘베스트핏’이라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온라인 쇼핑으로 속옷을 살 때 본인이 자주 입는 브랜드 제품명 사이즈를 입력하고 이에 대한 착용감을 선택하면, 새로 구매하려는 제품의 사이즈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온라인 쇼핑의 속옷 매출이 일반 의류 매출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가 사이즈 때문이라는 통찰에서 출발했다.
옆 테이블에서는 또 다른 스타트업 팀 ‘오파테크’가 텍스트와 이미지를 촉각으로 변환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점자 태블릿 연구에 한창이었다. 오파테크 팀원들은 “카페를 24시간 개방하는 데다 미팅을 하더라도 정처 없이 떠돌기 보다는 지정된 좋은 위치의 장소에서 할 수 있으니 한결 수월하다”고 입을 모았다.
KDB산업은행은 미래의 성장산업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공익재단인 KDB나눔재단을 통해 2013년 ‘KDB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스타트업은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자산으로 설립된 창업 기업으로, 아직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이전 단계라는 점에서 벤처와 구분된다. 이런 청년 사업가들에게 현실적인 교육과 멘토링을 통해 사업의 시장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유치 기회를 제공하는 게 프로그램 골자. 이들이 창업을 하면서 마주하는 가장 큰 두 개의 벽인 ‘자금’과 ‘인적 네트워크’ 지원에 중점을 둔다.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올해 선발된 15팀은 20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그리고 지난 달 23일 이 카페의 문을 열었다. 참가자들이 창업 과정에서 언제든 협업이나 회의, 세미나가 가능한 공간이 절실하다고 요구한 데에서 착안했다. 스타트업 카페가 단순히 장소만 제공하는 건 아니다. 정보를 교류하고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는 스타트업의 허브가 되는 게 목표다. 중국의 작은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창업 거리인 ‘처쿠(車庫) 카페’가 모델이다. 처쿠는 사무실이 없는 청년들이 노트북PC만 들고 와 창업 준비를 하고 상주하는 엔젤투자자들로부터 자금유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중국 벤처 양성소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제 육아서비스 플랫폼을 개발 중인 이지선(28)씨는 “이 공간에서 멘토를 만나고 피드백을 받는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데 확실히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베스트핏의 이동준씨도 “아이템을 실제 시장에서 평가 받고 싶은데 현장에 계신 분들이 멘토링도 해 주시고 투자유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KDB 스타트업 프로그램은 오는 11월 사업계획서를 프리젠테이션 하는 ‘데모데이’ 때 우수팀을 선발해 총 1억5,000만원 규모의 상금을 시상한다. 순위권에 들지 못해도 좌절하긴 이르다. 이날 참석하는 50여명의 벤처캐피탈이나 엔젤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을 조달할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KDB 스타트업 프로그램 1기 출신으로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폐수열회수설비를 만드는 SNS에너지 김찬호(30) 대표는 “망설이던 해외투자자가 있었는데 국책은행 주최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 수상 실적을 내미니 확신을 갖고 투자했다”며 “KDB의 공신력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SNS에너지는 작년 38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100억원대의 매출이 예상되는 등 급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기업들은 여전히 더 많은 지원에 목말라하는 실정이다. 현장에선 2~3년 전부터 스타트업 붐을 타고 민관 지원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정작 각각의 스타트업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나 민간의 스타트업 지원이 주로 IT 업종에 쏠려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카페가 상시화할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선 불투명하다. 이경황 오파테크 대표는 “제조업 스타트업은 하드웨어 쪽 멘토는 물론, 불꽃이 튀거나 시끄러워도 마음 편히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장소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스타트업 지원에 대한 좀 더 다각도의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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