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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부양 의무, 상식이라는 이름의 폭력

입력
2015.08.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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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점점 일말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 싶어지니, 그럴수록 최소한의 상식은 많은 사람들의 이루기 어려운 꿈이 되어가는 중이다. 문제는 흔히 사람으로서 알고 따라야 할 최소공약수로 이해되는 이 상식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시속(時俗)에 따라 변할 뿐 아니라 사람마다 또 처지마다 매우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겐 당연한 상식이 다른 사람에겐 차별이나 부조리함이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특히 돌봄과 부양의 문제는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면, 무엇도 당연한 게 없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돌봄의 일차적 책임은 가족에게 있는가? 남성은 일차적인 생계부양자인가?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당위성조차 되짚어볼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각들은 상식으로 통용되면서 문제를 파생시키곤 한다.

여성운동에서 계속되는 부부재산제에 대한 논쟁 역시 그 한 사례이다. 혼인 중에나 이혼 시에 재산 분할을 청구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분할 청구를 할 것이라 가정되는 쪽은 주로 여성이다. 주요하게 논란이 되는 지점 역시 경제활동을 한 남성과 가사노동을 한 여성 사이의 형평성 문제로, 찬성을 하는 쪽이든 반대를 하는 쪽이든 ‘상식’적으로 볼 때 부부의 재산을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여성에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해서 재산분할권이 시행되자, 그 동안 생계를 책임지기는커녕 폭력까지 행사해온 남편이 평생 노동으로 가족들을 부양한 아내에게 이혼과 함께 재산 분할을 요구하면서 식구들이 살던 집마저 갈라 가지자는 경우가 벌어지기도 했다. 여성들의 서로 다른 처지들을 돌아보지 않고 누군가의 상식에 입각해서 만들어지는 제도는 결국 어떤 여성에게는 유리해도 다른 여성들에게는 부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가족을 일차적인 부양과 돌봄의 단위로 보는 부양의무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부양의무제란 수급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가족이 책임지고 노동능력이 없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제도이다. 상식적으로는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능력이 있다면 부양의 의무를 다하는 게 맞고, 가족의 역할을 국가의 법제도로 인정하는 것이 가족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가족을 파괴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상식적이라는 부양의무제 자체인 경우가 허다하다.

장애를 가진 부모가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은 장애 자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다만 얼마라도 돈을 벌면 부모가 수급권을 잃게 되고 그러면 결국 정말 자신의 경제적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진 부부로 하여금 수급권을 지키기 위해 혼인신고를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고, 서류상 이혼을 하게 만드는 것 역시 상식에 따라 가족에게 지워진 부양의무제이다. 장애를 가진 아동을 유기하게 만드는 것은 반드시 가족마저 저버린 상식 없는 세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가족이 없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어중간하게 책임 지느니 가족이 없는 편이 나을 거라는 판단의 결과이기도 하다. 부양의무제는 이렇듯 가족을 버려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모순된 현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최소한 지켜야 할 상식에 대한 감각은 많은 경우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어떠한 상식이라도 구체적인 현실을 떠나서 혹은 맥락을 떠나서 무조건 타당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 상식을 법으로 제도화하는 경우에는 원래의 의도가 현실에서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과연 내가 아는 상식이 남의 형편에서도 타당한 것인지 미리 조심 또 조심해야 하고, 법이 시행되는 단계에서 끝없는 문제제기가 있다면 고치는 것이 옳다. 일견 상식적인 것 같지만 결코 현실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부양의무제가 조속히 폐지되기를 바란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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