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제목이 이상하지요? 방학 숙제라서 밀렸다 한꺼번에 쓴 일기에 대한 기억이야 빈번하지만, ‘아껴 쓴 일기’라니요. 시인은 일기 쓰기의 욕망에 시달리면서도 그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인가 봐요.
일기는 자아에 대한 성찰이니 많이 쓸수록 좋다고들 생각하죠. 예술가들이 일기를 예찬하는 경우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내면 일기’로 유명한 스위스 작가 아미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기는 마음을 털어놓은 곳이다, 그러니까, 친구이고 아내이다.” 그러니 아미엘이 뭐 하러 결혼을 하겠어요?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일기를 아껴 써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일기에는 함정이 있으니까요. 모리스 블랑쇼는 일기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처럼 쉽고, 그처럼 자기만족적이며 때로는 그것이 자초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분 좋은 반추”에 머물기 쉽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자의식 과잉과 자기 연민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일기를 읽으며 혼자 얼굴을 붉힌 적이 있지요.
시인은 자기의 통증보다 일찍 다녀간 통증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제 자신에게 도취되지 않는 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는 아팠지만 그 아픔의 꽃밭을 감싸고 있던 더 큰 아픔을 어머니와 누이에게서 감지합니다. 그의 일기에는 어머니보다 긴 이름의 욕망을 멈추고 산 한 사람과 숨도 못 쉬고 지낸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일기이지만 아름다워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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