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첫 TV토론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도널드 트럼프가 역풍에 휩싸이고 있다. 토론을 진행했던 폭스뉴스 여성앵커인 메긴 켈리를 상대로 도(度)를 넘어선 발언을 한 것이 공화당 내부의 거센 비난을 부르고 있다.
트럼프는 토론회가 끝난 뒤 자신의 과거 여성비하 발언을 문제삼아 송곳질문을 던졌던 켈리를 향해 ‘분풀이성’ 막말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이튿날인 7일 새벽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번 토론회의 최대 패자는 켈리”, “나를 짓밟을 수 없다”, “폭스 시청자들이 ‘빔보’(bimbo·섹시한 여자를 칭하는 속칭)에게 낮을 점수를 주면 켈리는 다른 프로그램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NBC의 시사프로그램인 ‘모닝 조’에 출연해서는 “폭스뉴스의 사회자들, 특히 켈리가 좋지 못했고 프로답지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나는 토론회를 즐겼다”고 비꼬았다.
트럼프가 결정적으로 역풍을 불러 일으킨 것은 그의 ‘피’ 발언이었다. 트럼프는 CNN 방송 ‘투나잇’에 출연해 “그녀의 눈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다른 어디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켈리가 월경 탓에 예민해져서 자신을 토론에서 괴롭힌 게 아니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언급인 것이다.
그러자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공화당의 다른 대선후보들이 일제히 그를 공격하고 나섰다. 공화당의 유일한 여성 대선주자인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는 8일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씨,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메긴 켈리 편입니다”라고 밝혔다.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도 트위터를 통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발언”이라고 말했고,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참전군인과 히스패닉, 그리고 여성에 대한 그의 공격은 기본적인 품위도 없는 심각한 인격 부족”이라고 날을 세웠다.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성명에서 “군 최고 통수권자라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자 우리가 기대하는 지도력과도 맞지 않는다”며 “도널드 트럼프를 배제함으로써 생길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보수단체 ‘레드 스테이트’ 집회에서 “53%의 여성 유권자들을 모욕한 트럼프의 말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모을 수 없는 말”이라며 “트럼프는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 등장한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도 “공화당은 여성과 전쟁을 벌이지 않고 있다”며 트럼프를 에둘러 비판했다.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성명에서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거나 맞선다고 해서 상대의 인격을 파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고,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CNN 인터뷰에서 켈리를 ‘언론인으로서 존경하지 않는다’고 말한 점을 빗대어 “켈리는 훌륭한 언론인”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폭스뉴스의 소유주이자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 역시 트위터를 통해 “친구 도널드는 이것이 공인의 생활이라는 점을 배워야 한다”고 언급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전 트위터를 통해 ‘다른 어디라는 말은 코를 뜻하는 것이었다’고 변명했지만 경쟁 대선주자들의 비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가운데 8일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트럼프를 기조연설자로 초청한 보수단체 ‘레드스테이트’는 초청을 취소했다. 에릭 에릭슨 ‘레드스테이트’ 대표는 7일 CNN 등을 통해 “아무리 직설적인 논객이거나 비전문적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품위도 그런 선 중에 하나”라고 비판했다. 에릭슨 대표는 트럼프 대신 켈리를 연사로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는 자신을 자문해온 공화당 선거전략가인 로저 스톤을 해고하면서 선거캠프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트럼프 선거캠프의 여성대변인인 호프 힉스는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어젯밤 트럼프가 스톤을 해고했다”고 밝히고 “스톤은 선거 캠페인을 자신의 홍보에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스톤은 “트럼프가 나를 해고한게 아니라 내가 트럼프를 해고했다”고 반박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