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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극복,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고?

입력
2015.08.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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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등 사회가 유발한 고통을 힐링 담론은 개인 문제로 치부

상담보다 세상 바꾸는게 합리적

가짜 힐링 / 폴 몰로니 지음ㆍ윤영삼, 김경미 옮김 나눔의집 발행ㆍ440쪽ㆍ1만6,000원
가짜 힐링 / 폴 몰로니 지음ㆍ윤영삼, 김경미 옮김 나눔의집 발행ㆍ440쪽ㆍ1만6,000원

한국에서 자기계발 담론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신자유주의 흐름이 도입된 2000년대부터다. 사람들은 사회적 안전망 없이 스스로 각성해 자신의 생존권을 직접 취득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자기계발서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변형된 자기계발의 논리를 설파하는 ‘힐링 멘토’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젊은이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약속하며 오늘의 고통을 버텨내라고 가르쳤다. ‘힐링’담론은 여전히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은폐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의 상담심리학자 폴 몰로니가 ‘가짜 힐링’에서 비판하는 심리치료와 정신의학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저자는 심리치료가 근대 산업사회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포용하지 않고 정신질환을 앓는 반사회적 존재로 외부화해 왔음을 지적한다. 정신의학자들은 단순한 신경과민에 우울증이라는 질환명을 붙였고, 수줍음을 많이 타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도 성격장애가 있는 것으로 분류했다.

최근의 심리치료는 정신질환을 치료 대상으로 보는 입장에 반발해 ‘인간중심치료’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저자의 눈에는 문제가 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병을 치료한다는 접근방식 대신 카운슬링으로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심리치료사들은 자유의지를 유난히 강조하고, 상담 대상인 정신질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책임지고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자기계발서의 논리다.

폴 몰로니는 “기존의 심리치료는 정신적 문제를 개인 스스로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사회적 요인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정신의학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집단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폴 몰로니는 “기존의 심리치료는 정신적 문제를 개인 스스로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사회적 요인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정신의학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집단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같은 이치로 ‘행복심리학’도 비판한다. 행복심리학은 부정적인 심리현상의 극복에만 치중하는 기존의 심리학을 비판하며 현대인들이 긍정적 마음을 찾도록 유도하자고 주장하는 심리학계의 새로운 유행이다. 그러나 정신수양을 강조하는 동양적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행복의 형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문제가 있다.

저자는 심리적 불안의 원인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증명하는 중요한 연구로 ‘화이트홀’연구가 있다. 런던 화이트홀 지역의 중산층 공무원 1만7,000명을 네 직급으로 나눠 10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장 높은 직급의 사망률이 가장 낮고 가장 낮은 직급의 사망률은 그 3배였다. 직업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실업은 부끄러운 실패라는 낙인이 될 수 있고, 가족관계도 위축시키며, 우울증에 빠져 재취업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늘어난다. 심리문제의 원인이 계급적 환경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고질적인 문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비판정신의학’이라는 흐름이 형성됐다고 소개한다. 기원은 1960년대 활동한 영국의 정신과 의사 로널드 랭의 ‘반(反)정신의학’에 있다. 랭은 정신질환자의 행동이 “비이성적인 세상에 대한 이성적인 반응”이라 설명했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조엘 코벨은 심리치료와 카운슬링이 사회가 유발한 고통을 자기관리나 자기개선의 문제로 오도했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심리치료의 대상이 개인에 머무르면서 발생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치료, 더 나아가 지역사회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정신질환은 전염성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에 따라 일군의 정신의학자들은 집단치료, 사회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정신의학의 연구결과는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행과 정신적 고통의 원인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사회적 불균등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질병’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기에, 불행을 이야기하도록 설득하기보다 불행의 원인인 세상을 바꾸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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