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노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해 갈 것입니다. 노동개혁은 일자리입니다.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고령시대를 앞두고 청년들의 실업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미래에 큰 문제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 청년 실업률은 10%를 넘어섰으며, 미래가 불안한 우리 청년들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현상을 빗대서 소위 3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내년부터 정년 연장이 시행되고, 향후 3~4년 동안 베이비부머 세대의 아들딸이 대거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청년들의 고용절벽은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저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토대이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합니다. 내년부터 60세 정년제가 시행되면, 향후 5년 동안 기업들은 115조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인건비가 늘어나면 기업들이 청년채용을 늘리기가 어렵습니다. 정년 연장을 하되 임금은 조금씩 양보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청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예전처럼 일단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고,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으로는 기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채용과 임금이 결정되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 고용을 유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임금체계가 바뀌고 노동 유연성이 개선되면, 기업들은 그만큼 정규직 채용에 앞장서 주셔서 고용과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노와 사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대기업과 고임금 정규직들이 조금씩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제일 먼저 끄집어낸 것은 ‘노동개혁’이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해고의 유연화다. 이 두 가지를 실행해야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것과 우리 경제가 재도약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해고를 유연하게 하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전문가들의 지적을 보면 논리적인 연관성이 부족하다.
덧붙여 노동개혁에 대한 접근이 경제개발계획 수립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는 점도 아쉽다. 지금 노동환경이 어떤지에 대한 반성 없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계획을, 중공업이나 서비스산업 육성 계획처럼 툭 던지면서 국민의 이해를 구한다면 누가 선뜻 납득할까. 잘 해야 그런 논리에 현혹된 세대 일부의 갈등이나 부추기지 않을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이해가 대립하는 당사자들을 엮어내야 하는 노동개혁은 쫓기듯 해서는 안 된다. 노사정위원회라는 기존의 조정 장치를 통해 숙고하고 양보ㆍ타협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다. 노동개혁을 지난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케 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해서 이렇게 밀고 나가서는 지속가능한 최선의 결과물을 끌어낼 수 없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우리에게 필수적인 과제라는 것은 대다수 국민이 동감하리라 본다. 그 이유는 객관적으로 새로운 거시사회적 및 거시경제적 다이너미즘에 지금의 노동시장이 부조응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오늘날 우리의 노동시장은 저출산ㆍ저성장ㆍ고령화와 서비스산업 부상 등 현재를 규정하는 새로운 인구-산업적 특성요인들을 염두에 두면서 구축된 질서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청년고용 문제를 위시해 고령자들의 노후대책, 그리고 여성들의 고용과 사회적 자아실현 등 여러 가지 굵직한 정책과제들이다. 개혁의 방정식은 결코 단순치 않지만, 그 절박성은 매우 크다. 이럴 때일수록 이해갈등이 첨예해지고 사회통합의 원칙이 중요하다. 어느 사회적 약자의 차단된 이해실현을 위해, 누가 어떤 기준에서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희생부담의 결정 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나아가 그러한 희생으로 도입되는 새로운 정책이 실효성 있는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실행전략이 요구되는 것인지…. 논의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해고규제 완화 등은 그 계급적 편향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추진 방식에 있어서도 지금과 같아선 민주성의 함도가 심히 결여돼 있다. 더불어 개혁의 효과에 있어서도 그것들이 청년고용의 신장에 얼마나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 것인지 명확한 상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전체 노동시장의 총체적 개혁의 비전 속에서 그것들이 어디에 위치하는 것인지, 그로 인해 침해당하는 이들의 이해는 어떤 식으로 보상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의 참 의도가 무엇이든 일단 ‘강요된 희생’으로밖에 다가오지 않으며, 민주사회의 대중으로서 그에 대해 저항으로 화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매일노동뉴스 8월 6일 박명준의 일자리와 민주주의 ‘개혁정치의 그랜드 비전’▶전문 보기)
“OECD가 지난해 발표한 34개 회원국의 고용보호입법지수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발표된 고용보호입법지수 중 ‘정규직 개별해고’에 관한 보호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34개국 중 12위다. 중간보다는 높지만 과보호라 보기는 어렵다. 또 ‘정규직 집단해고’에 관한 보호지수를 보면 34개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이 두 가지 지수를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정규직 보호지수는 OECD 중간 수준으로 과보호 상태라 단정할 수는 없다. 또 정부와 여당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청년고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여 인건비가 줄어들면 여분의 돈으로 청년고용을 더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소기업의 경우 연공서열로 인한 임금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로 인한 인건비 절감효과는 크지 않다. 대기업의 경우에도 임금피크제로 인건비가 줄어든다 하여 그것이 청년고용에 활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대기업이 청년고용을 많이 늘리지 않는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 아니다. 사내유보금이 많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투자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피크제로 청년고용이 많이 늘어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재계는 정부와 여당의 이같은 노동개혁안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독일이 2003년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는 ‘하르츠(Hartz) 개혁’에 성공했다며 정부의 노동개혁을 독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Hartmut Seifert) 전 독일 한스뵈클러재단 경제사회연구소장은 재계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하르츠 개혁이 고용률 제고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반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기 때문에 독일정부가 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은 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와 여당이 기업의 이익을 늘려주기 위해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은 경제성장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창비주간논평 7월 29일 ‘노동개혁안의 명분 아닌 명분’▶전문 보기)
“노동시장 논의를 재개하고자 한다면 노사정은 아래 몇 가지 점을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우선, 지난 노동시장 개혁 논의 과정에서 확인되었다시피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 수준 및 구조상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안전망 강화가 맞교환 되는 소위 ‘빅딜’ 방법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안전망 수준이 현저히 취약해 등가 교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합적 비전 합의를 전제로 개혁의 이슈들을 중범위 수준에서 재조정하고 각 의제별로 논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특히, 사회안전망 확대 및 대ㆍ중소기업 상생은 개혁의 공간을 확장하는 하부구조로서 우선 논의가 필요한 이슈들이다.
다음으로 임금피크제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등의 이슈는 긴요함과 필요성 모두 절실하나 입법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에는 업종 및 개별 기업간 차이가 크고 이해조정 과정의 변수가 많아 노사간 자율협약에 의한 조정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근로계약 일반해지(통상해고), 기간제법 적용 제외 확대, 사내하도급과 파견근로 제도 개선 등의 이슈는 노사정간 이견이 크고 그 적용 과정의 문제 및 효과에 대한 예측이 충분하지 않아 중장기적 관점에서 연구와 공론화가 필요한 범주들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다시 노동시장 개혁 논의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는 국면이다. 필요에 동의해 논의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노사정 모두는 각자의 자세와 행보를 수정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노동시장의 핵심 이슈들을 독자적으로 정책화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특히, 쟁점이 되는 이슈들을 정책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 기업 내 노사 갈등 확대의 가능성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한국일보 7월 24일자 아침을 열며 ‘다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하여’▶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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