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가 괜찮은 ‘꼰대’가 되기로 결심했던 시점이었다. 반값 등록금 투쟁이 한 고비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취약계층 20대들의 생애사를 조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88만원 세대 이후 삼포세대에 이르기까지 청년담론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중심의 계급편향적인, 경제 중심의 논의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신을 대표하지 못하는 빈민가족 출신의 청년들을 만나, 그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토익마저 사치에 불과한 ‘청춘 밖의 청춘’들은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이 저임금의 불안정 노동자로 빠르게 늙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꿈꾸는 ‘평범한 가족’, 연봉 3,000만원 수준의 스위트홈은 요원해 보였다.
킹콩북의 첫 책은 이런 밑바닥 청춘들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다. 비판적 교육학자로 이름 높은 헨리 지루의 ‘일회용 청년-누가 그들을 쓰레기로 만드는가’는 전 지구적인 청년위기를 풍부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원인을 복합적으로 진단한다. ‘청년들에 대한 전쟁’은 신자유주의의 부상 때문인데, 그것은 투기적 자본의 지배, 사회복지의 후퇴, 공권력 위주의 징벌국가, 권위주의의 강화와 민주주의의 쇠퇴, 소비주의의 확산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집합적 투자가 필요한 미래의 활력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미래 세대를 포기하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일회용 노동자가 되거나, 감옥산업과 의료산업을 먹여 살리는 잠재적 범죄자와 심신이 병든 ‘쓰레기’가 된다. 이런 ‘쓰레기’를 먹어 신자유주의 체제는 생존한다. 이런 미국의 상황이 우리의 미래라고 믿고 싶지 않지만, 제국주의 전쟁을 예외로 한다면 저자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헨리 지루가 주장하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치는 일상생활 속에서 대안적 공론장을 예비하는 비판적 지식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 자그마한 번역서를 출간한 것도 그것이 비판적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출판사 경험이 없는 연구자들이 단행본을 출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편집과 디자인을 제외하고 번역부터 유통까지 혼자서 감당했다. 좌충우돌하는 시간이 많아서 출간이 많이 늦어졌지만,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이 주는 ‘고통스런 즐거움’이 없지는 않았다. 사회과학 서적 치고, 그것도 다소 어려운 비평서이지만 창고에 쌓인 것보다 독자들의 손에 들린 것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래도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청춘들을 대상으로 소개한 책인데 실제 구매층은 사십대 중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책 자체의 한계일수도 있지만, 젊은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슬픔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무지한 ‘꼰대’의 진실 말하기를 그들이 알아주기를 여전히 기다린다.
심성보 킹콩북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