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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G20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입력
2015.08.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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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획재정부 담당 기자가 됐다. 5년 만이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고, 과천에 있던 청사는 세종으로 이사 왔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기획재정부 직제표에 눈길이 갔다. 2010년의 가장 큰 이벤트였던 주요20개국(G20) 관련 조직이 어디 있나도 찾아 봤다. G20 이름을 단 조직은 사라졌고, G20 APEC ASEM 녹색기후기구(GCF) 등 업무를 포괄하는 국제금융협력국이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0년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 정부의 모든 역량은 G20에 집중됐다. 특히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지상과제는 G20 서울 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었다. 장관은 정상회의 직전 ‘8박12일’로 세계일주라 불러도 될 출장을 다녀왔고, 차관보는 G20 때문에 1년 중 100일 이상을 해외에 나가 있었다. 한 연구기관에선 G20의 경제적 효과가 31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서울에서 차량 2부제(홀짝제)가 실시됐고, 그 붐비는 강남 테헤란로가 통제됐다. 심지어 검찰은 하던 수사를 잠시 멈추고 ‘숨고르기’를 했다.

당시 정상회의 전후 분위기로 봐선 서울 G20 정상회의가 국제경제사에 남을 역사적 사건이 될 것도 같았다. 환율전쟁을 막을 ‘경상수지 예시적 가이드라인’을 도입하겠다는 정상회의 결과를 두고 언론은 ‘서울합의’, ‘서울코뮈니케’, ‘서울선언’ 같은 표현을 쏟아냈다. 마스트리히트나 브레턴우즈처럼, 어쩌면 서울의 이름이 경제학 교과서 한 페이지를 장식할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G20이 서방선진7개국(G7) 회의 영향력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기자 역시 당시 이런 분위기나 정부 예측에 상당 부분 공감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런 기사도 썼다.

기획재정부 장관은“지금까지는 다른 나라가 정한 규칙을 따르기만 했으나, 이제는 우리가 규칙을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 자평했다.(2010년 6월 8일자)

이번 ‘경주선언’은 환율 문제 및 국제기구 개혁 등과 관련해 당초 예상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된다.(2010년 10월 24일자)

우리나라 주도로 G20 정상회의 테이블에 오른 ‘코리아 이니셔티브’가 마침내 서울 선언의 중요한 한 축으로 공동선언문에 반영됐다.(2010년 11월 13일자)

다시 2015년으로 돌아와 본다. 이제 사람들은 G20을 말하지 않는다. 그 때 오바마 후진타오 사르코지 메르켈이 서울에 모여 뭘 합의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합의가 있었지만 독일은 작년에도 국내총생산 8%만큼 흑자를 냈다. 어떤 언론도 ‘코엑스합의’나 ‘서울체제’란 말을 쓰지 않는다. G20 회의가 열릴 때 보도자료가 나오지만, 일반인의 관심에서는 멀어진 지 오래다.

불과 5년이 지나 기억하지 않을 이벤트에 우리는 왜 그리 열광했던 것일까?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G20의 성과를 계승ㆍ발전시키지 못했거나, 애당초 그 행사가 정권 홍보용 성격이 짙었거나. 후자일 개연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

“속았다”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 번 그치고 말 행사일 지, 진짜 역사에 남을 사건이 될 지를 간파할 능력이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자연히 다시 5년 후를 상상해 보게 된다. 과연 창조경제의 성과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내수활성화와 경제 혁신에 방점을 찍었다는 ‘초이노믹스’를 입에 올리게 될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내 한국의 지분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이가 있을까?

부끄럽게도 기자는 5년 동안 예전에 모자랐던 통찰력을 얻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정부도 별로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5년 후 어느 날, 지금 쓰게 되는 몇 건의 기사를 생각하며, 민망함에 한밤중에 이불을 걷어찰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경제부 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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