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신학대 학장을 지낸 변선환이 1995년 오늘(8월 7일) 향년 68세로 별세했다. 그는 권위와 탐욕의 기독교에 맞서 관용과 조화를 외치다 교회로부터 파문 당한 신학자였다.
감신대 학장이던 그는 90년 ‘불타와 그리스도’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 속 그의 예수는 십자가에서 숨진 역사성을 앞세워 구원의 가능성을 독점하는 역사론적 예수가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자기 이해의 한 상징으로서의 예수였다. 그는 기독교가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와 공존할 수 있다고 여겼고, 실제로 이기영(1922~1966) 같은 불교 철학자들과 활달하게 교유했다. 저 논문에서도 그는 종교다원주의의 당위와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의 신학은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 중심의 보수 기독교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한국적 신학의 과제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종교에 대한 서구적 편견, 기독교만 ‘Christianity’이고 여타의 모든 종교는 ‘~ism 이데올로기’로 표기하는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첫째였고, 오직 교회만 계시와 은총의 통로일 수 있다고 설교함으로써 세상(의 교회)과 시민을 단절시키는 배타적 교회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두 번째였다. 세 번째 과제가 ‘불타와 그리스도’에서 밝힌 실존적 기독론 즉 기독교의 절대성을 극복하고 종교 다원론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는 개종을 전제로 한 정복적ㆍ제국주의적 선교론이 아닌 대화적 선교론을 주장했다.
보수 감리교단은 92년 5월 7일 변선환을 종교재판대에 세웠다. 이른바 감리교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재판장 고재영 목사)였고, 장소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 금란교회였다. 그 교회 담임목사였던 김홍도는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으로 가면 좋으련만 가지 않고 국가를 혼란케 하는 것이나, 기독교의 탈을 쓴 무신론자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파괴하려고 드는 것은 사탄의 간계”라고 성토했다. 그의 신도 3,000여 명의 야유 속에, 또 스승을 지키려고 모여든 감신대 일부 교수와 학생들의 절규 속에 진행된 재판에서 변선환은 이렇게 최후 진술했다. “흑백논리만 횡행하는 감리교의 현실이 안타깝다.(…) 기독교는 더 이상 정복자의 종교가 아니며 전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종교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올꾼이 선생님 변선환’(사진) 인용.
판결은 감리교회법상 최고형인 ‘출교(黜敎)’였다. 그는 신자 자격을 박탈당했고, 교적에서 삭제됐고, 목사직과 신학대 학장직에서 파면됐다. 그리고 3년 뒤, 그러니까 20년 전인 95년 오늘 별세했다. 김홍도는 2003년 4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횡령 혐의로 징역 30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받았고, 08년 4월과 11년 10월 설교 중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각각 벌금형을 받았고, 14년 10월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현재 금란교회 동사목사로 재직 중이다.
2015년 한국 기독교회에는, 비록 많지는 않고 힘도 없지만, 변선환을 신학적 스승으로 여기는 학자와 기독교인들이 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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