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빵 굽는 걸 옷 사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는 빵집에서나 볼 수 있는 7쿼터짜리 반죽기를 비롯해 웬만한 제과제빵 도구들이 다 있다. 외국 갈 일이 있으면 제과제빵 용품점에 꼭 들를 만큼 관심이 지대하다. 그래서 빵 만드는 건 요리사인 나보다 더 잘한다. 그 중 최고는 역시 식빵. 유화제를 넣지 않고 만드는, 하얀 속살이 부드러운 식빵은 집 앞 유명 브랜드 빵집 것보다 월등히 맛있다.
식빵은 영어로 bread다. 우리는 어릴 적에 일반적인 빵을 통틀어 bread라 부른다고 배웠기 때문에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면 식빵이 모든 빵의 대표라도 된단 말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식빵은 말 그대로 식사용으로 먹을 수 있는 빵을 말한다. 그러니 우리 머릿속에 그려진 네모 반듯하거나 위가 둥그런 모양의 빵들만 식빵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세계 곳곳엔 그 나라의 문화에 따라 다양한 식빵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둥근 지붕을 가진 빵은 영국식 식빵으로 뚜껑을 덮지 않고 굽기 때문에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풀어 올라 오픈탑(open top)이라 부른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 흔히 쓰는 네모진 식빵은 굽는 틀에 뚜껑이 달린 미국식 식빵이다.
독일과 체코 등에서는 호밀가루가 많이 들어가 시큼한 맛이 나며 둥글고 긴 모양의 로겐 브로트(roggen brot)가, 프랑스에선 잘 국내에도 잘 알려진 긴 막대 모양의 겉이 바삭한 바게트(baguette)와 버터와 달걀이 많이 들어가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둥근 모양의 브리오슈(brioche)가 식빵이라 불릴 만하다.
또 우리에게 친숙한 베이글(bagle)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의 식빵이고, 터키의 에크맥(ekmek)과 중국 북부 지역의 화쥐안(花捲ㆍ일명 꽃빵이라 불리는 빵으로 다른 음식과 함께 싸 먹는다), 멕시코의 토르티야(tortillaㆍ또띠야)도 식빵의 범주에 속한다.
나는 캐나다에서 학창시절의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북미식 식빵 문화에 가장 익숙하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빵 요리는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Grilled Cheese Sandwich)다. 북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피넛 버터 앤 젤리(Peanut Butter & Jelly)와 함께 소울푸드로 꼽는 음식이다. 피넛 버터 앤 젤리는 촉촉한 빵에 땅콩 버터와 과일 잼을 함께 발라서 먹는, 대표적인 아이들 점심식사다.
지금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간단하고 맛있게 만들어 먹는 법을 소개할 테니 눈 크게 뜨고 보시길.
두툼한 식빵 두 장과 치즈를 준비한다. 치즈는 노란색 체다 치즈 2장, 하얀색 스위스 치즈 또는 프로세스 모짜렐라 치즈 1장, 그리고 레지아노 치즈 갈아 놓은 것이나 파마잔 가루를 준비한다.
이제 1번 식빵 한 쪽 면에만 살짝 녹인 버터를 바른다. 너무 높지 않은 온도로 팬을 달군 뒤 버터가 발린 면의 식빵을 놓고, 반대쪽 면에는 체다 치즈와 스위스 치즈를 얹은 후 케첩을 살짝 뿌려준다. 그리고 파마잔 가루를 뿌리고 다시 체다 치즈 한 장을 올린다. 2번 식빵에도 한쪽 면에만 녹인 버터를 살짝 바른다. 이번에는 버터가 발린 쪽을 위로 향하게 해서 체다 치즈 위에 얹는다. 1번 식빵이 거의 익으면 뒤집어 준다.(이때 치즈들이 모두 녹으면서 약간 밖으로 흐르는 것이 참 보기 좋다.) 버터를 식빵의 한쪽 면에만 바르는 것은 촉촉한 식빵 사이에 치즈들이 녹아 섞이면서 부드러운 맛이 생기고 버터를 바른 바깥 쪽 두 면은 바삭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의 케첩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치즈의 맛을 잡아주기 때문에 2개까지는 너끈히 먹을 수 있다. 식성에 따라 바싹 구운 베이컨을 넣어 먹어도 맛있다.
오늘은 빵 만들어 줄 아내가 바쁘니 식빵 구워 달란 소린 못하겠다. 대신 집 앞 빵집에 다녀와서 오랜만에 소울푸드를 즐겨볼 참이다. 독자들에게도 권해본다. 딱 5분이면 맛 볼 수 있으니 바람도 쐴 겸 집 앞 빵집에 다녀오는 건 어떨까?
요리사
레이먼 김 '포스트 Eat' ▶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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