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여름방학숙제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건 곤충채집이었다. 식물채집이야 하루 뚝딱 해치울 수 있었으나 멀쩡한 잠자리채도 없이 산에 올라 곤충을 잡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나마 딱정벌레 종류는 나무둥치나 잎에 가만히 붙어있어 다행이었다. 풍뎅이 사슴벌레 하늘소 등이 좋은 대상이었고, 몸집이 큰 하늘소가 많이 잡혀왔다. 하늘소 중에서도 제일 큰 장수하늘소가 천연기념물(제218호)로 보호되기 시작한 것이 1968년 11월. 우리 세대가 방학숙제를 너무 열심히 했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없지 않다.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많았으니 숲을 갉아먹는 해충(害蟲)을 잡는 일이 ‘국가시책’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다. 송충이 잡기 행사도 그 일환이었다. 딱정벌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곤충 종류다. 모든 동물 종류의 2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4촌’ 관계인 풍뎅이 사슴벌레 하늘소 가운데 큼지막한 턱이 사슴 뿔처럼 생긴 사슴벌레는 애완용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열대지방 수입품도 있는 모양인데, 한 쌍에 1~2만 원부터 한 마리에 수십만 원짜리까지 인터넷에서까지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같은 딱정벌레이지만 하늘소는 의미가 좀 각별한 듯하다. 천연기념물에 이어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된(2012년) 장수하늘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1802년(순조2년)에 편찬된 조선어휘집 물보(物譜)에는 이 딱정벌레를 ‘천우(天牛)’로 소개해 놓았다. ‘하늘의 소’라는 의미다. 세계 전역에 살고 있는 풍뎅이나 사슴벌레와 달리 한반도와 중국, 시베리아지역 외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름과 서식지만 보아도 자연스럽게 친근감이 들 만하다.
▦국립수목원이 지난 3일 초록하늘소 한 마리를 다시 찾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 달쯤 전에 경기 광릉 숲에서 발견하여 그 동안 진짜 초록하늘소인지 확인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1884년 영국 곤충학자가 우리 땅에서 처음 발견한 이후 이번에 12번째 그 존재를 확인했다. 1986년 11번째 발견된 곳도 광릉 숲이었으니, 그곳에서 29년 동안 멸종되지 않고 대를 이어왔음을 짐작할 만하다. 희귀곤충 지정에서 나아가 특별보호대상종이나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한다. ‘여름철 한 마리 딱정벌레 이야기’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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