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의 방한 행보가 신선하다. 그는 9명의 미 연방대법관 중에서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지난 6월 미 대법원이 동성결혼금지법에 대해 5대4의 의견으로 위헌 판결을 내릴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그의 성향대로 그제 국내 성소수자들과 식사를 하며 성소수자 인권 상황과 법 제도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양승태 대법원장, 김소영 대법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줄곧 소수자 보호와 인권을 소재로 올렸다. 소수자 보호와 인권 신장 측면에서 헌법 가치를 보호ㆍ구현하려는 법조인으로서의 일관된 신념과 자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자신의 진보적 성향과 신념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수렴해 판결에 반영하는 미 대법원의 구성과 체계 덕분이다. 미 대법원은 대체로 보수(4명) 진보(4명) 중도(1명) 성향 대법관들이 황금비율을 이뤄 사회의 여러 목소리를 대변하며 치열한 논쟁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 법체계가 사회의 변화와 요구를 제도적으로 수렴하고 포용하여 심각한 양상으로 번질 수 있는 갈등과 대립을 법 테두리 내에서 완화시키고, 사회가 더 의미있게 발전하도록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의 현실은 대조적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등 대법관 14명 중 진보 성향대법관은 단 1명도 없다.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진보적 성향 대법관 5명이 포진해 우리 사회 빈곤층과 약자, 소외계층을 좀 더 배려하는 목소리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이념적, 철학적 스펙트럼이 너무 편향적이다. 더구나 14명 중 검사 출신 1명을 뺀 13명 전원이 법관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 12명, 남성이 12명이다.
그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16일 퇴임하는 민일영 대법관 후임 후보 3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대 법대, 법관 출신, 50대 남성’이라는 공식은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다. 이러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상고심 사건 판결처럼 소수의견 하나 없는 ‘13대0’전원일치 판결이 잇따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법원이 사건 당사자들과 국민들이 수긍할 만큼 균형잡힌 결론을 도출하려면 출신ㆍ이념ㆍ성향이 다양한 대법관들의 심도있는 논쟁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처럼 편향적인 대법관 구성은 사회적 약자 보호나 진보적 가치에 소극적인 일방적 판결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도 반영되기 어렵다. 사법부와 국민간 괴리가 커지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지 않도록 대법원은 대법관 구성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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