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발간한 관보에 낯 뜨거운 표현이 담긴 판결문 하나가 실렸다.
'피고인 ○○○는 △△△가 배우자가 있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2013년 ○월 ○일경 ○○○의 승용차 안에서 △△△와 1회 성교했다.'
이 판결문은 지난 2월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가 위헌으로 결정나면서 간통으로 처벌받았던 한 남성이 재심 끝에 무죄를 인정받았다는 내용에서 나온 것이다.
대법원등 법조계에 따르면 간통죄가 위헌으로 결정나면서 간통으로 처벌받았던 피고인들이 무죄로 판결받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또한 재심 과정에서 무죄 판결 내용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공개돼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형사소송법 440조는 '재심에서 무죄의 선고를 한 때에는 그 판결을 관보와 그 법원 소재지의 신문지에 기재해 공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법원은 판결문을 공개해도 되는지에 대해 대상자에게 동의 절차도 얻지 않는다. 재심을 통해 무죄가 나왔다는 것을 관보에 게재하는 것은 과거 법원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또한 무죄 판결을 받아 실추 되었던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관보를 통해 널리 알리자는 취지다.
하지만 간통죄처럼 과거의 치부가 지나치게 자세히 드러나면서 억울함을 풀어주기라기보다 오히려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보에 나온 다른 간통 피의자 판결문을 보면 어떤 모텔에서 누구와 몇 차례 관계를 맺었는지, 몇 년에 걸쳐 몇 차례 관계를 맺었는지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난다.
간통죄의 재심 판결문이 간통이 무죄라는 억울함을 푸는 내용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성생활이라는 개인의 내밀한 부분을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셈이다. 관보는 인터넷에 접속해 전자관보시스템에 들어가면 누구나 쉽게 열람할 수 있다. 간통 과정이 적나라하게 알려지면서 당사자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법원은 관보를 통해 판결문에 적시하는 개인의 신상정보를 그대로 공개하고 있다. 재판부가 작성한 판결문을 그대로 싣는 것이 원칙이다 보니 간통 피의자의 이름, 생년월일, 직업, 주소, 등록기준지가 그대로 나타난다. 사실상 지인이라면 이 사람이 누군지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재심이 아닌 보통 형사사건의 경우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 본인이 원할 때만 관보에 공시한다.
이처럼 간통죄 폐지에 따른 재심 청구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헌재 간통죄 위헌 결정으로 재심 청구가 가능한 사람은 2008년 10월 31일 이후 판결이 확정된 사람들로 3000여명에 달한다. 간통죄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헌재 결정 이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까지 합치면 간통죄 무죄로 관보에 게재되는 경우는 3000명을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법원 관계자는 4일 "간통죄로 기소된 사람의 명예 회복을 위해 관보에 공개되는 과정에서 관련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신상과 내용이 공개돼 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지만 법에 따라 공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팀 onnew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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