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라-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
나 현- 난지도를 바벨탑으로 재해석
오인환- 감시 피해 사각지대 찾기
하태범- 흰색의 재난현장… 거리두기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전이 4일 서울 사간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했다. 김기라(41) 나현(45) 오인환(50) 하태범(41) 4인의 ‘올해의 작가상’ 후보자들이 서울관 지하 1층 3ㆍ4전시실을 한 자리씩 나눠 갖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친다. 이들 중 한 명은 심사를 거쳐 10월 6일 ‘2015 올해의 작가’의 영광을 얻는다.
영상작가 김기라의 공간은 무용수, 최면의학 전문의, 영화감독 등과 협업해 사회 문제를 다룬 영상으로 채워졌다. 그는 현대 사회를 “돈이란 단일 이념이 지배하는 것 같지만 다양한 꿈이 부유”하는 ‘떠다니는 마을’이라 명명했다. 동명의 음반도 제작했다. 서울시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던 위재량 시인의 시를 엠씨 메타, 넉살, 제리케이 등 힙합 음악가들이 랩으로 고쳐 불렀다. 이들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전시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김기라는 “환경미화원 시인과 저항적 자세를 보여주는 힙합 뮤지션의 만남을 통해 여전히 자본의 힘에 억눌리지 않은 예술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카이브형 전시를 선보여 온 작가 나현은 전시장에 3층 규모의 지구라트(벽돌로 쌓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탑 형식)를 세웠다. 초대형 설치작픔 ‘난지도-바벨탑 프로젝트’다. 서울 난지도는 1978년부터 93년까지 산업 폐기물을 쌓아 만든 언덕이지만, 나현은 이를 다민족 국가의 상징, 즉 바벨탑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지구라트 위에 난지도에서 자생하는 귀화 식물들을 심어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에 설치된 우물 안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는 인터뷰 영상이 들어 있다. 나현은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인환은 전시장 자체를 작품으로 활용하는 ‘장소 특정적’ 미술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번에 그는 타인의 시선을 피해 개인적인 공간을 찾아 나서는 ‘사각지대 찾기’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전시장 벽면과 천장에 붙어 있는 분홍색 테이프는 그 영역이 전시장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 TV)의 감시 범위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상 속에서는 제대 군인들이 개인 생활이 없는 병영 내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가는 방법을 말해 준다. 오인환의 작품은 지배담론에 저항하기 위해서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각지대를 찾는 작업이 지속돼야 함을 암시한다.
사진작가 하태범은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일본, 필리핀의 쓰레기장 위 빈민촌 ‘톤도’, 폭격을 맞은 연평도 등 재난ㆍ기아ㆍ전쟁의 현장을 미니어처로 재현하고 사진을 촬영한다. 그런데 그 사진 속 재난의 현장은 온통 흰색으로 돼 있다. 그는 시각 정보로 가득 찬 재난 보도사진과 자극적인 단어로 장식된 헤드라인이 사건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대상을 흰색으로 칠한 작품을 통해 의도적인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세계의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접근보다 객관화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한 ‘올해의 작가’전을 계승한 제도로, 2012년부터 매 해마다 4명의 후보자를 선정해 전시를 열고 네 명 중 한 명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해 왔다.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면 해당 작가의 작품세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SBS를 통해 방영된다. 2012년에는 2인조 설치미술작가 문경원ㆍ전준호, 2013년에는 화가 공성훈, 2014년에는 사진작가 노순택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었다. 11월 1일까지. (02)3701-950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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