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을 통해 드러난 롯데그룹 경영 행태에서 가장 놀라운 건 신격호 총괄회장의 1인 ‘황제경영’ 체제다. 재계 5위, 국내에만 8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기업집단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 이사회 같은 최소한의 절차도 무시됐다. 언행조차 여의치 않은 93세의 신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 명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해고 지시를 내리면 그게 곧 법이었단다. 불과 0.05%의 지분만 갖고도 이런 전횡이 가능했던 건 416개에 달하는 미로 같은 순환출자와 총수의 지배권을 뒷받침해온 비밀 지분구조 탓이다.
이번에 새삼 알려진 롯데의 순환출자구조는 국내 다른 재벌기업에 비해서도 크게 뒤처진 상태다. 극소수 지분밖에 없는 재벌 오너 일가가 과도한 기업 지배력을 행사해 온 관행의 시정하기 위한 조치로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된 지난해를 전후해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집단도 순환출자 고리를 10개 내외로 축소시키며 수직계열화에 나섰다. 하지만 롯데만은 무려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구멍가게식 오너 체제를 고집해온 셈이다. 차제에 롯데 순환출자구조의 적법성 등을 면밀히 따져 혁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더 심각한 건 한일 양국에 걸친 롯데 특유의 비밀 지분구조다. 국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실체조차 모호한 신 총괄회장 개인소유의 일본 광윤사가 지분 27.65%를 통해 일본 롯데홀딩스를 지배하고, 일본 롯데홀딩스가 다시 지분 19.07%를 통해 국내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를 지배하는 구조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이 장악해온 것으로 알려진 12개의 L투자회사가 호텔롯데의 지분 72.65%를 보유함으로써 국내 롯데그룹 전체에 대한 신 총괄회장의 지배력을 뒷받침 해왔다. 문제는 광윤사는 물론이고, 일본 롯데홀딩스나 수수께끼인 L투자회사 등이 모두 외국법인인 데다 비상장사여서 지분구조가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다는 점이다.
롯데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당장 경영권 향방은 물론이고, 롯데라는 기업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극심한 혼란과 국민적 불신을 야기하고 있다. 신씨 형제가 서로 우위를 장담하지만 주총 결과가 어떨지 몰라 기업은 선장 잃은 배처럼 표류하고 있다. 롯데 국적(國籍)에 대한 혼란 역시 베일 속의 비상장 일본 법인이 국내 롯데의 지분을 장악한 상황에서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마침 국세청이 최근 대홍기획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롯데 자금흐름에 대한 조사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차제에 금융 당국과 공정위 등도 나서서 베일 속의 롯데 지배구조까지 낱낱이 조사해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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