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 제한 포함 강력한 규제… IS 가담한 자녀, 부모가 여권 취소
문제학생 교사가 국가기관 보고 등 對테러 5개년 계획 가을 입법 추진
캐머런 발표 직후부터 거센 비판, 민주주의·표현의 자유 훼손 심각
“당신이 소년이라면 몸에 폭탄을 부착시킨 채 테러 현장으로 내몰 것이고, 소녀라면 노예로 만들어 온갖 학대를 가할 것이다. 그게 바로 이슬람국가(IS)의 실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달 20일 ‘대(對)테러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같은 자극적 표현을 동원해 극단주의 척결을 천명했다. 영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기록된 런던 지하철 테러 발생 10년 만이자, IS의 튀니지 해변 테러로 영국인 30명이 숨진 지 약 3주 만이다.
캐머런 총리의 강경한 태도에서 드러나듯 이 계획에는 극단주의 확산과 테러를 예방하기 위한 강력한 규제 방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 분야에 대한 국가의 감시가 강화되며, 특히 젊은 세대와 무슬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요소들이 많아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더 늦기 전에 테러 위협이 급증하는 현실을 바꿔놔야 한다는 여론과 대테러 계획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충돌하면서 영국 전역에서 논란이 뜨겁다.
● 英 정부, 극단주의 가담 국민 급증에 고심
‘총알받이’ ‘치명적 독’ 과 같은 거친 단어를 써 가며 이슬람 극단주의를 비판한 캐머런 총리의 속내도 어느 때보다 복잡할 것 같다. 그는 올 5월 총선에서 ‘하나의 영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앞세워 압승을 거두었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을 통일된 하나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며 “이 원칙만이 영국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테러 계획 발표 연설에서 역시 영국의 화합에 방점을 찍으며 “영국이 더욱 응집력 있는 국가로 거듭나려면 이제는 이슬람 극단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의 확고한 다짐과 달리 영국 내 분열은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해지며 혼란만 거듭하고 있다. 특히 극단주의에 가담하려고 시리아 등지로 떠나는 영국인 비율이 다른 유럽국가와 비교해서도 매우 높다고 집계되면서 무슬림에 대한 여론은 더욱 차가워진 상태다. 영국 정보 당국에 다르면 최근까지 극단주의 단체들의 창궐지인 시리아나 이라크로 떠난 영국인은 약 700명. 대부분이 10대, 20대 젊은이들이며 이들 중 절반만 자국으로 돌아왔다. 올 2월 무슬림 10대 소녀 3명이 IS 가담을 위해 시리아로 떠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세 자매가 자녀 9명과 함께 IS에 몸담기 위해 시리아로 향했다. 이러한 소식이 들린 지 열흘도 안 돼 IS 주도 튀니지 총기 난사 테러로 사망자 38명이 발생했고, 이 중 30명이 영국인으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올 초 영국에 진출해 반(反)이슬람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 영향으로 반이슬람 정서가 이미 상당히 확산한 상태에서 이 같은 일들이 벌어져 이슬람에 대한 반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 전방위적 규제 방안 담긴 대테러 계획
캐머런 총리는 대테러 계획에 극단주의 척결을 위한 강경 조치를 다수 마련해 넣었다. 캐머런과 당국자 등이 밝힌 대테러 계획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자녀가 시리아 등 극단주의 단체 창궐국으로 떠난 것으로 의심될 경우 부모에 여권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에 극단주의 메시지가 드러나는 방송 채널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이 극단주의적 정보를 추리고 이를 삭제할 수 있도록 한다 ▦교사는 극단주의 성향을 보이는 학생을 예의주시해 이상이 있을 경우 국가기관에 보고한다 ▦대학에서 극단주의적 연설을 하려는 자는 그와 반대 의견을 가진 이가 해당 강연에 참석할 시에만 연설이 가능하다 등이다.
● 지나친 억압 우려한 비판 목소리 거세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 대테러 계획이 여러 맹점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문제는 ‘이데올로기’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영국 내각부와 유엔에 대테러 관련 자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앤드류 실케 이스트런던대 교수는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끌리는 이유는 이데올로기보단 정체성 때문”이라며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돕고 싶어 한다”고 가디언에 밝혔다. 그는 “극단주의 가담자들은 자신을 테러리스트가 아닌 ‘이타주의자’라고 믿는다”면서 “이처럼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스스로를 정체성의 수호자로 보고 있다는 점을 교정하는 게 대테러 방안의 핵심이 돼야 한다”며 정부 대책이 잘못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고 감시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는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등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대테러 계획은 교사들이 극단주의적 신호를 보내는 아이들을 선별하고 심각할 경우 정부기관에 보고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가 제시한 구분 기준이 모호해 자칫 아이들을 필요 이상으로 억압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디언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극단주의 성향 구분 가이드라인에는 ‘정치적ㆍ도덕적 변화를 바라는’ ‘불만을 표하고 부당함을 느끼는’ ‘정체성과 소속감을 찾길 바라는’등의 애매한 기준이 포함돼 있다. 진보적, 개혁적 의견을 피력하며 각종 시위에 참가하는 청년들 역시 정부의 예의주시 대상이 된다. 즉 아이들이 범법 행위를 하지 않거나 의심을 받을 만한 최소한의 합리성이 없어도 교사들이 이 같은 포괄적 기준에 따라 예의주시 대상으로 삼으면 부당한 감시와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15세 무슬림 여학생이 학교에 검은색 긴 치마를 입고 온 것이 종교적 색채를 띤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수업 에 참석시키지 않아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이슬람 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부추길 여지도 있다. 영국 무슬림위원회는 “정부가 모든 무슬림을 극단주의자로 단정하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낸 셈”이라며 캐머런 총리의 연설 직후 즉각 반발에 나섰다. 6,400만 영국인 중 400만 가까이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이 모두 특별 감시 대상자가 되는 데다, 좋은 무슬림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무의식적으로 구분 짓게 만들어 분열을 조장하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 위원회의 슈자 샤피 사무총장은 “극단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막는 것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슬람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극단주의가 무엇인지 면밀히 정의해야 정부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내 무슬림 주도 비정부기구 10개의 통솔 기구인 무슬림자선포럼(MCF) 역시 “모든 무슬림이 극단주의의 조력자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높아진 데 우려를 표한다”며 “이슬람 관련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감시를 받으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다수 무슬림들을 돕기 힘들어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극단주의자가 자라나는 근본 요인인 사회 불평등 완화대책은 배제한 채 ‘통합을 장려한다’는 모호한 구호만으로는 극단주의 확산을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권단체 컴프리헨시브퓨처의 레베카 히크먼은 “통합을 강조한 캐머런 총리의 의지가 진실하다면 11세 때부터 종교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아이들을 나누는 선별 시스템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히크먼에 따르면 잉글랜드 중남부에 위치한 부유지역인 하이위컴의 한 학교는 올해 4% 수준으로 파키스탄 출신 신입생을 받았으나, 이곳에서 불과 1마일 떨어진 마을의 학교에는 이 비율이 65%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히크먼은 “두 집단은 해가 갈수록 기회 획득의 측면에서 격차가 벌어졌고 이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는 계기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캐머런 정권의 대테러 계획의 세부 내용은 곧 공식 발표돼 이르면 가을 입법 추진될 예정이다. 대테러 계획이 극단주의자의 테러를 근절해 전세계의 본보기가 될지, 반대로 원래 의도와는 달리 영국의 분열을 한층 심화시킬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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