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생각을 자주 한다. 누구는 그만큼 늙은 거라 핀잔도 주지만, 더 지긋하게 나이 잡순 어른들껜 불손한 얘기일 수 있다. 경거망동할 마음은 없다. 그래도 자꾸 떠오르는 기억들을 벌레 눌러 죽이듯 무시하긴 힘들다. 주로 부끄럽고 슬픈 기억들이 많다. 어머니 손잡고 유치원 가기 싫다며 대로에서 떼쓰던 일부터 수줍음 많은 성정 탓에 사람들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던 사춘기 시절 일들까지. 맥락이나 이유도 불분명하다. 느닷없이 떡하니 떠올라 하염없이 유체이탈 하게 만드는 그것들은 흡사 시간의 장막을 꿰뚫고 들어온 과거의 유령들 같다. 문득 내려다본 그림자가 발걸음을 묶어버리는 정황이랄 수도 있다. 그럴 땐 돌연 자존감이 무너지고 세계가 낯설어진다. 나를 제외한 타인들이 악마로 변하는 무슨 공포영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되기도 한다. 현재에 대한 뜨끔한 자성으로 이어지는 상황이긴 한데, 단순히 머릿속 상념으로만 눙쳐버릴 일은 아니라 본다. 그래서 그때마다 평소엔 안 하던 일, 오래 방치했던 일 들을 두루두루 살피게 된다. 몸 관리나 인간관계에 대한 점검도 거기 속한다. 요컨대, 느닷없이, 나답지 않게(?) 성실해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 뻣뻣하게 뭉친 굳은살이 그렇게 들통 나고 깎인다. 이런 나는 얼마나 낯선가. 유령에게 현재를 들키게 된 마흔 중반, 과거의 유령들을 미워하진 말기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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