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38살 때 자서전을 냈다. 84살 때 사망했으니 삶의 절반도 살기 전에 일생을 스스로 풀어낸 셈이다. 그 이후 그는 자서전에 쓴 대로 살겠다고 공언했다.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뒤섞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내용들이 달리 특유의 과대망상 속에 반죽되어 초현실적인 영화 장면처럼 전개되는 바, 그것들의 사실 여부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도입부에선 어머니 태 속에서 본(?) 것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할 정도다. 그는 거짓을 말한 것일까. 내 편견일 수 있지만, 거짓이 사람을 즐겁게 하거나 황홀하게 만들 순 없다고 믿는다. 사실과 진실은 동질의 것이 아니다. 사실만을 진실이라 여긴다면, 사실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과 판단으로 길항하는 삶의 모든 국면 자체가 허구에 불과해질 수 있다.
예술가란 표면적 사실의 진위보다, 그것들을 형성하고 드러나게 하는 내밀한 심층 구조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그 안에선 자신조차 대상화되고 물질화된다. 요컨대, ‘나는 그’인 것이다. 카프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를 수 있을 때 진짜 문학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내가 나만으로 정식화되고 굳어버릴 때, 역설적으로 삶은 타인의 것이 된다. 그래서 다시 질문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거울 앞을 떠나 스스로 걸어 잠근 창밖에 문득 떠오르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을 본다. 삶은 늘 다른 데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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