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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트럼프, 오바마의 창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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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트럼프, 오바마의 창조물

입력
2015.07.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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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의 내년 대통령 예비 경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의 활극을 보는 듯 하다. 경선 후보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며칠 전 자신의 휴대폰을 식칼로 자르고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는 엽기적인 영상을 공개했다. 경선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를 ‘멍청이’라고 비난했더니 그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자 맞대응한 것이다. 영상 말미에 “이 모든 방법을 써서도 (휴대폰 파괴에) 실패한다면 그냥 당신 전화번호를 도널드에게 줘라”는 표정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난감함이 묻어 나온다.

▦ 막장 선거판으로 공화당 수뇌부는 죽을 맛이다. 트럼프의 거침없는 막말, 인종차별 발언 등으로 당 전체가 웃음거리가 되는데도 트럼프에 제동을 걸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를 비웃듯 그의 지지도는 수직상승을 그리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의 지지율을 한참 뛰어넘어 1위를 질주하고 있고, 이제는 전국 유권자 지지도에서도 선두다. 트럼프의 지지세를 ‘반짝 인기’로 보고 그를 가십(gossip) 거리로만 다루겠다던 언론들도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다”며 자세를 고쳐 잡고 있다.

▦ 트럼프 신드롬은 무기력한 공화당에 대한 보수세력의 분노가 배경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으로 바꾸고 있는데도 공화당이 아무 것도 못하는 있다는 인식이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성폭행범”이라고 거침없이 내뱉는 트럼프의 상식 이하의 막말에서 불안한 보수들은 정서적 동질감을 느낀다. 정말 대통령직을 넘보는 책임 있는 대권주자라면 꺼낼 수 없는 민감한 얘기를 ‘아니면 말고’식으로 할 수 있는 게 그의 유일한 경쟁력(?)이다.

▦ 오바마가 ‘진보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재선 부담이 없는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취임 초 약속한 공약이 속속 현실화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대법원의 관문을 통과한 건강보험개혁법과 동성결혼 합법화, 쿠바와의 수교 재개, 이란 핵협상 타결 등 보수세력의 결사반대를 뚫고 이룬 그의 성과는 눈부시다.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고도, 보수성향의 법관이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오바마의 진보 질주에 아무런 견제가 되지 않는 공화당과 대법원에 대한 반발에서 트럼프의 공간이 생긴다. 그를 ‘오바마의 창조물’이라고 하는 이유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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