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TV 광고에서 유럽계 제약사가 일상생활에서 생긴 흉터뿐 아니라 과거엔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수술, 화상 흉터까지 없애거나 줄여주는 흉터치료제를 선보였습니다. 피부에 민감한 여성과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흉터치료제가 ‘약’이 아닌 ‘기기’라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습니다.
광고 속 흉터치료제는 실리콘 겔로 이뤄져 있습니다. 실리콘 겔이 얇은 막을 형성해 수분 손실을 줄임으로써 흉터의 원인인 콜라겐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방해하죠. 막을 형성한 직후엔 실리콘 겔이 피부로 흡수되지 않고 건조됩니다. 의약품이 아닌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체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거죠. 다른 흉터치료제 중엔 식물 추출물이 주성분인 제품도 있는데, 이 치료제는 피부로 흡수되기 때문에 의약품에 속합니다.
의약품이냐, 의료기기냐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사용 가능한 환자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료기기는 몸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약을 복용 중인 환자, 임산부, 수유부가 써도 됩니다. 하지만 몸에 들어가는 의약품은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죠.
똑 같은 이유로 주름 개선용 필러도 약이 아니라 기기입니다. 얼굴 피부 진피층에 피부 유사 성분을 주입해 볼륨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화학반응 없이 물리적으로만 작용하는 제품은 기기로 분류됩니다. 필러와 비슷한 주사 형태의 보톡스는 의약품입니다. 근육에 주입된 성분이 화학작용으로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펴주기 때문이죠.
약간 다른 이유에서 임신이나 배란 여부를 알아보는 키트도 지난해 12월부터 의료기기가 됐습니다. 화학작용이 있지만, 치료 아닌 진단을 목적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의료기기로 전환됐습니다. 덕분에 구입하기 편해졌습니다. 의약품일 때는 약국에서만 사야했지만, 지금은 의료기기 판매업 허가를 받은 편의점, 마트,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허가나 부작용 신고 절차 등이 다르다는 점도 기억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물안경 중에도 도수가 들어간 건 스포츠용품이 아니라 의료기기입니다. 눈이 커 보이는 서클렌즈 역시 미용용품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료기기죠. 이들 제품을 살 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한 기준과 용법을 따져봐야 합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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