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화 보여주는 종교·사상… 시대상 읽을 수 있는 삶의 모습 담겨
'효'에 대한 생각 재해석·정리하며 현대 사회에 적용·비판 활동도 유용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들 합니다. 본능처럼 샘솟는 자식 사랑에 비해 부모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발휘되기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효’를 소중한 가치로 가르치고 배워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요? 누구보다 바쁜 어린이들에게 효도니 양심이니 하는 정신적 가치를 살피고 가르칠 여력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고 놓아서도 안 되는 일. 우리 고전의 대표작인 ‘심청전’을 읽으며 효도와 더불어 다양한 생각 거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심청전’의 배경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효녀 지은 설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은은 서른이 넘도록 혼인도 않고 홀어머니를 모셨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부잣집 종이 되어 어머니를 봉양한 인물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처음 이야기로 만들어진 ‘심청전’은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수많은 이본을 낳았습니다. 1912년 소설가 이해조는 ‘강상련’이라는 제목의 신소설로 개작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이본을 선택해 책으로 내느냐에 따라 다양한 심청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심청전’의 줄거리를 따라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효녀 지은처럼 심청도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납니다. 아버지 심학규는 양반의 후손이지만 가세는 기울고 눈도 보이지 않아 아내 곽씨의 삯바느질과 남의 집 일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어렵게 가진 딸을 낳은 지 칠일 만에 곽씨가 세상을 떠납니다. 젖먹이를 앞에 두고 심 봉사는 울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동네 아낙들을 찾아 다니며 동냥젖을 먹여 심청이를 키웁니다. 여섯 살이 되자 심청이는 ‘말 못하는 까마귀도 부모를 공양할 줄 안다’며 아버지를 대신해 동냥에 나섭니다.
심청이 열다섯 살 되던 해 어느 날, 딸을 마중 나가던 심 봉사가 개울에 빠지고 맙니다. 지나던 길에 심 봉사를 구해준 몽은사 화주승은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합니다. 찢어지는 가난은 가늠도 않고 심 봉사는 단박에 공양미를 약속합니다. 눈만 뜨면 딸의 고생을 덜 수 있다는 희망이 앞섰겠지요.
하지만 심 봉사의 약속은 심청이를 죽음으로 내몰게 됩니다. 심청이 쌀 삼백 석을 마련하기 위해 뱃사람들의 제물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죠. 사실을 안 심 봉사는 하늘이 무너집니다. 울며불며 말리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배에 오른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집니다.
끝날 것 같던 ‘심청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옥황상제의 명에 따라 용왕이 심청이를 용궁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심청전’을 읽는 동안 유교는 물론 불교, 도교, 민간 신앙까지 옛사람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여러 종교와 사상을 만나게 됩니다. 고전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의미 중 하나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용궁에 도착한 후 꿈같은 날들이 이어지지만 아버지 생각에 심청이의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결국 심청이는 연꽃에 담겨 바다로 띄워지고 연꽃은 왕에게 진상됩니다. 왕비가 된 심청이는 이미 고향을 떠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의 맹인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 심술 사나운 뺑덕어멈의 꼬임에 넘어가 비렁뱅이가 된 심 봉사는 어렵사리 한양에 도착해 맹인잔치에 참석합니다.
갖은 고난을 헤치고 드디어 부녀는 상봉합니다. 아버지의 간절함과 딸의 효심이 하늘에 전해졌는지 심 봉사가 번쩍 눈을 뜹니다. 다른 맹인들도 덩달아 눈을 뜨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심청전은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작품이지만, 다양한 활동과 함께 하면 인물과 이야기를 좀 더 새롭고 다채롭게 접할 수 있습니다.
먼저 문학작품으로 하는 독후 활동의 기본인 줄거리 요약하기입니다. 주인공과 주요 인물은 누구인지, 주인공이 원하는 것 또는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 그 과정에서 방해물은 무엇인지, 결말은 어떠한지를 찾고 살을 붙여 정리하면 줄거리가 됩니다.
다음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읽어보는 활동입니다. 어떤 문학작품이든 의식주는 물론 당시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자연스레 녹아 있습니다. ‘심청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양반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나 여행, 이웃들 간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종교나 사후세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책 내용에서 근거를 찾으며 알아볼 수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에 시대 읽기까지 작품 이해도를 한층 높였으니 심청이의 효행을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의 ‘효’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심청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소설 또는 판소리로 정리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말로 전하는 사람들, 글로 정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덧붙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활동은 수많은 지은이들의 공통적인 생각, 다시 말해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미 있는 고전 읽기가 되려면 작품에 대해 나름대로 재해석하거나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자기 삶의 자양분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심청이의 결정을 비판하거나 현대 생활에서 효를 실천할 방법을 폭넓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심청전’의 여러 인물을 통해 옳은 행동의 기준을 만드는 토의 활동도 추천합니다. 먼저 심청이와 심 봉사, 곽씨 부인, 그 외 인물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근거를 들어 평가합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가 중시해야 할 옳은 행동과 그 기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글쓰기 활동으로는 이야기 바꿔 쓰기를 추천합니다. 수십 종의 ‘심청전’의 이본들의 공통분모인 심청이의 어린 시절과 부녀의 상봉 부분은 그대로 두고 가운데 부분만 바꿔 봅니다. 자신만의 창의력을 발휘해 독특한 심청전 이본을 만드는 활동입니다.
2007년 중국의 저장성 저우산 군도에는 효녀 심청을 기리는 사당과 박물관이 세워졌습니다. 그들이 아는 심청이는 백제 시대 전남 곡성 출신으로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라밖 이야기까지 전해지는 ‘심청전’인 만큼 마음껏 창작력을 발휘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정화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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