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노트'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 노트 기예르모 델 토로 등 지음ㆍ이시은 옮김 중앙북스 발행ㆍ264쪽ㆍ3만5,000원

열렬한 영화팬이면 모를까 기예르모 델 토로는 대중들에게는 그리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헬보이’ ‘블레이드2’ ‘퍼시픽림’을 열거하면 누구나 귀가 열린다. 앞의 영화들 중 한 편 정도는 보고나 들었을 테니까. 짐작하겠지만 델 토로는 이들 영화의 감독이다.

델 토로는 독특한 영화감독이다. 멕시코에서 아버지 신용카드를 활용해 저예산 장편영화 데뷔를 한 뒤 할리우드의 눈에 띄어 대형 상업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에 걸쳐있다. ‘헬보이’와 ‘블레이드2’, ‘퍼시픽림’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영화의 외피를 둘러싸고 있고, ‘크로노스’와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등은 예술영화의 영역에 가깝다. 델 토로의 영화들을 억지로 상업영화, 예술영화의 두 이질적인 진영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그의 영화들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정신을 정화시키는 곳"이라고 일컫는 작업실 블리크 하우스에는 거대한 프랑켄슈타인의 머리 등 유령의 집을 연상케 하는 기괴한 형상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중앙북스 제공

델 토로의 영화들엔 농도만 다를 뿐 염세적이고 음침하고 공포스러우면서도 중세적인 기운이 인장처럼 스며있다. 악마의 아이이나 밝은 세상을 위해서 싸우는 기이한 히어로 헬보이, 뱀파이어의 피가 섞였으나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사내 블레이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지우기 위해 거대 로봇을 조종하며 괴수와 싸우는 여인 마코(‘퍼시픽림’) 등은 양부의 횡포로부터 달아나 지하왕국으로 스며든 오필리아(‘판의 미로’)의 우울하고도 기괴한 정서와 맞닿아있다.

델 토로의 이 범상치 않은 영화세계를 ‘블리크 하우스’와 창작 노트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블리크 하우스는 로스앤젤레스의 델 토로 자택 근처에 있는 그의 작업실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거대한 머리가 2층 난간에 붙어 손님을 맞이하고 갖은 기괴한 형상의 인형과 그림과 소품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델 토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델 토로는 ‘유령의 집’을 연상케 하는 이 곳에서 “정신의 정화를 느낀다”고 말한다. 책은 블리크 하우스의 독특한 인테리어를 일별하며 공포소설과 공포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던 한 소년이 어떻게 세계적 감독으로 성장하게 됐는지 가늠케 한다.

블리크 하우스는 맛보기이고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창작 노트다. ‘헬보이’ ‘블레이드2’ ‘악마의 등뼈’ ‘크로노스’ 등 델 토로 영화 속 이색적인 캐릭터들과 기이한 소품들이 어떤 고전들의 영향을 받아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됐는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델 토로가 영화의 밑그림용으로 그린 그림들도 지면을 가득 채운다.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책의 서문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에 비견”된다고 주장한다. 예술적 경지에 이른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의 사랑까지 획득한 대가의 치열한 작품 세계에 대한 헌사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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