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봤던 ‘만화로 읽는 세계사’의 성인 버전이랄까.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인 그래픽노블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저자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한 이 책은 쉽고 명쾌하고 재밌다. 무엇보다 복잡다단한 금융 먹이사슬을 세련되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분석한다.
저자가 세계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시발점으로 꼽는 이는 미국 소설가 아인 랜드(1905~1982)다. 이기주의를 미덕으로, 이타주의를 도덕적 결함으로 간주하는 랜드의 사상을 접한 후 “사람이 그토록 노골적으로 자기만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던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공포와 매혹을 느끼며 랜드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고백한다. 러시아 출신의 랜드는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던 중 배우 프랭크 오코너와 결혼해 소설을 썼다. 소설과 시나리오를 통해 특출한 능력 없는 보통 사람들을 ‘중고 인간’, 장애인 등 능력을 상실한 소수자를 ‘기생충’으로 부른 그는 인류 발전은 경쟁에서 이겨 권력을 장악한 소수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역설한다. 이런 개똥철학은 어의 없게도 ‘객관주의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비주류 철학의 한 기류를 이루게 된다.
독자가 ‘이게 세계 경제위기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여길 때쯤, 그녀의 출세작 ‘파운틴 헤드’를 읽고 반한 대학생과 그들이 조직한 집단의 실체가 드러난다. 이 집단에 레이건 정권부터 아들 부시 정권까지 수십년간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한 앨런 그린스펀이 포함됐다. 2부는 그린스펀을 비롯한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의 면면을 통해 2008년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소개한다. 요컨대 인간 이성과 자유시장의 장점을 신봉한 이들이, 투자 리스크를 떠안는 대신 일부 이익을 가져가는 파생상품을 고안해 거품 경제를 일으키고 그린스펀 퇴장과 함께 터진 거품이 연쇄 반응을 일으킨 결과 세계 경제위기가 초래됐다는 설명이다. 3부는 이런 우파들의 특성을 좌파와 비교하며 아인 랜드의 극우주의가 미국사회에서 요즘 다시 회자되는 이유를 살핀다.
컬러 만화가 어디까지 무성의하게 보일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컷은, 저자가 실제 인물들을 얼마나 닮게 그렸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 작품 속 인물들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하나씩 검색하게 되는데, 사진에 딸려 나온 자료를 함께 읽으며 자연스럽게 보충학습도 하게 된다. 단 “보수주의자는 자기 가치관을 위협하는 사실들을 외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과학 분야에 진보주의가 보수주의자보다 월등하게 많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같은 선언적 주장이 난무해 우파라면 엄청나게 읽기 불편한 책이다. 첫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아인 랜드의 소설이 좌파에게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역겨운 것처럼.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