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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수술실 요지경… 스마트폰에 빠져 치명적 의료사고

입력
2015.07.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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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설문조사 해보니,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 사용 인정

의료현장 기술적 위험요인 1위 올라… 주시 태만·처방전 제때 발급 못해

수술실 IT기기 금지 움직임에 일부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도

미국에서 수술 도중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환자 측 변호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뭘까. 수술실에 있었던 의사와 간호사, 보조원 등의 휴대전화나 태블릿PC 통신 기록을 신속하게 확보하는 것이다. 의료 사고의 상당수가 수술에 집중해야 할 의사나 간호사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정신이 빠지는 바람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스마트폰이 급속히 보급된 2011년 이후 스마트폰이 환자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의료기술 발전을 평가하는 비영리단체인 ECRI 연구소는 스마트폰을 의료현장의 10대 기술적 위험요인 가운데 1위로 평가했다. 바이러스에 오염된 스마트폰을 수술실에 들고 들어와 환자가 감염되는 경우도 문제지만, 의사나 간호사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어 수술 실패로 이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체스터 의대 마취과 피터 파파다코스 박사는 “수술이나 진단 등 중대한 의료행위 도중 의사들이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겨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주요 병원은 평판이 하락할까 두려워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발생한 의료사고 관련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텍사스주 댈러스에 살던 마리 밀네(여ㆍ61)는 2011년 부정맥을 치료하기 위한 심장수술을 받던 도중 숨졌다. 평소 심장 이외에는 건강했던 만큼 밀네 가족들은 의료과실로 단정하고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가족 측 변호사가 재빨리 확보한 당시 수술팀의 통신 기록을 통해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다. 마취 전문의로 수술에 참가했던 로버트 린켄버거는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바람에 환자 혈액의 산소 포화도가 심각하게 떨어진 사실을 20분 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의료사고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크리스토퍼 스필러스 의사도 페이스북 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수술 중에 인터넷에 열중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술 도중 찍은 사진을 올린 게 들통나 처벌을 받았다.

수술실에서 발생한 건 아니지만, 보스턴에서도 스마트폰 때문에 환자가 제때 처방전을 받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의사들이 휴대용 스마트폰으로 전산망에 접속해 처방전을 내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게 의료사고로 이어졌다. 한 여의사가 ‘혈액 희석제’투여를 중단하라는 처방을 입력하던 중 친구로부터 파티 초대 문자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 이 의사가 답신을 보낸 뒤 처방전 입력을 완료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환자는 사흘이나 ‘혈액 희석제’를 더 복용하게 됐고 심장 주위에 피가 가득 고인 뒤 응급실로 실려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의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와 관련 실험도 스마트폰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심장 수술 도중 혈액을 체외로 순환시키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수술실에서 문자 메시지를 포함해 인터넷을 서핑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접속한다고 인정했다.

물론 ‘수술 도중 스마트폰을 사용했다’는 응답자 93%는 ‘환자에 대한 집중력을 잃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오레건 주립대학 실험은 그런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대학 연구진은 모의 쓸개 수술 도중 휴대폰이 울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실험했다. 18명의 레지던트 외과의사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휴대폰으로 방해 받을 경우 무려 8명이 수술에 실패했다. 반면 아무런 방해 요인이 없는 조건에서는 18명 중 단 한 명만이 실수를 저질렀다. 실험을 주도한 로빈 퓨어바커 교수는 “최소한 초보 외과의사는 휴대폰으로 주의력이 산만해지면 환자를 위험하게 만들게 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미국 의료계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사적인 IT기기의 수술실 반입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 비행기 이ㆍ착륙 등 중요한 순간에는 조종석에서 기장과 부기장이 잡담이나 책을 읽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 의료계에서 스마트폰 위험성을 최초로 경고한 파파다코스 박사는 “의사들이 의료목적으로 스마트폰이 필요하다면 개인용과 의료용을 별도로 구비해야 하며, 수술실에서는 의료용 기기도 반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간호사협회도 최근 응급상황에서 사적인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할 것을 권장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모든 신경을 환자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이때 개인용 스마트폰은 응급실 밖에서 별도 직원이 관리토록 규정했다.

미국 외과의사 협회도 비슷한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검토 중이다. 이 협회가 2008년 내놓은 기존 가이드라인은 수술 도중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라는 정도지만, 스마트폰에 따른 의료사고가 빈발하면서 최근 더 강력한 내용으로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실험을 통해 위험성을 확인한 오리건 외래환자 수술센터는 환자들을 접촉하는 공간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을 아예 금지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또 이 규칙을 어기는 의사나 간호사에 대해서는 인사고과나 연봉 결정에서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제시 아람바이드 센터장은 “이번 결정은 그 동안 의료진이 수술실에서 부적절하게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점을 솔직이 인정하고, 앞으로는 환자와 환자의 안전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스마트폰 사용 금지 움직임에 대해 일부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 스콧 제이콥슨 박사는 “수술실에서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일은 흔치 않으며, 나는 지난 20년간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실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경우는 음악을 틀어 놓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비뇨기과 전문의인 앤드류 니브 박사도 의료 현장에서 스마트폰의 필요성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환자 치료에 필요한 비뇨기과 협회의 가이드 라인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수술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나중에 환자에게 보여주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이해가 빠르다”고 주장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발달된 새로운 통신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의사들의 업무효율이 하루 평균(8시간 근무 기준) 39분이나 높아지며, 이는 그만큼 환자를 돌볼 시간이 늘어나는 걸 뜻한다는 주장도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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