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 이야기’(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돌배게)는 1914년 1차대전이 터진 해 7살 철부지 소년이던 저자가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는 1933년까지 보고 겪은 바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제3제국 건설의 추진력이 나치의 폭력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고 저 책을 썼다. 즉 바이마르공화국 지배정당이던 사회민주당과 막강 야당이던 공산당의 무기력과 비겁과 변절, 다수 독일 시민들의 대세 투항적 선택에 주목했다. 책에 대한 한 신문 리뷰에는 “1933년 3월5일 선거 때만 해도 독일인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숫자가 히틀러에 반대표를 던졌다. 2차 대전 전 마지막 치러진 그 선거에서 나치는 득표율 44%로 사실상 패배했다. 56%가 나치에 반대했다. 그러나 나치가 휘두른 테러의 공포와 불안 속에 대중들은 너무나도 쉽게 굴복하고 열렬한 나치 지지자로 돌변해갔다.”고 적고 있다. 득표율 44%를 ‘사실상 패배’라니….
나치는 한 해 전인 1932년 오늘(7월 31일) 치러진 총선거에서 이미 제1당이 됐다. 히틀러의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NSDAP)은 7월 총선에서 1,375만표(37.3%)를 득표, 2년 전인 30년 선거 때의 득표율(18.3%)을 2배 이상 늘렸다. 2년 전인 28년 총선에서 나치가 얻은 표는 고작 81만표(2.6%)였다. 독일 인민들은, 대세에 순응한 게 아니라, 이미 20년대 말부터 그 대세의 일원이었던 셈이다. 그 원인을 두고 주요 정당들의 무능과 정국 혼란을 탓할 수는 있지만, 나치 테러의 공포에 대중이 굴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폭력은 제3제국 이후 본격화했다.
다시 말해 나치는 83년 전 오늘, 노동3권까지 보장한 독일 최초의 민주 헌법이자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헌법으로 꼽히던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에 의해 ‘합법적이고도 민주적으로’ 의회 권력을 장악했다. 유권자들은 32년 4월 대통령선거 포스터 ‘우리의 마지막 희망(Unsere Letzte Hoffnung)- 히틀러(사진 왼쪽)’에 묘사된 추레한 시민들에게서 대공황의 실업과 빈곤에 찌든 자신들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단정한 두 여성을 모델로 “우리 여성 유권자들은 국가사회주의당에 투표합니다”라는 문구를 새긴 7월 총선 포스터(오른쪽)는 독일의 전통적 여성상을 부각함으로써 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거였다.
33년 1월 히틀러는 수상이 됐고, 나치는 한 달 뒤 사민당과 공산당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한다. 3월 23일 제국의회는 수권법(전권위임법)을 가결, 히틀러의 명령이 곧 법임을 법으로 선포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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