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서 산업디자인 전공 "더 자유로워 보여" 연극의 길로
연극의 경직된 양식 깨기 위해 예술실험
전시장에는 한 번에 관객 한 사람씩만 방문할 수 있다. 관객이 직접 불을 켜고 끄면 그 때마다 조명과 소리, 전시장의 풍경이 바뀐다. 골판지ㆍ풍선ㆍ빈 페트병 따위를 재활용한 남루한 입체 형상이 등장한다. 테세우스 신화를 비틀어 다가오는 죽음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미노타우르스를 화자로 내세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아스테리온의 집’을 낭독하는 목소리를 끄고 다른 스위치를 올리면, 죽은 자의 마스크 네 개를 쓴 괴수 두 마리가 등장한다.
서울 창성동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이 2015년 두번째 기획전에 미술작가가 아닌 연극연출가 적극(38)을 초대해 전시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열었다. 적극은 오태석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아래에서 일하다 2010년 1인 연극팀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다페르튜토(dappertutto)는 ‘어디로든 흐르는’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연극이 진행되는 상황이나 연기자에 따라 공연 내용을 바꿔버리는 특유의 연출기법을 설명해준다. 황신원 큐레이터는 “연극의 근본 원칙에 의문을 던지는 적극의 연출 스타일이 미술 전시에도 실험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리라 봤다”고 말했다.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적극은 “사람의 움직임이 없을 뿐, 연극과 비슷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만들었다”고 했다. 전시장을 바꾸는 스위치에는 1장부터 5장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데, 각 장은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 아래 반복되는 내용이다. 관객은 내키는 대로 스위치를 켜고 끄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 수 있다. 적극은 “연극에서는 관객에게 큐(시작 신호)를 부여하기가 어렵지만 전시로는 가능할 것 같아 이런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적극은 서울대 미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했으나 동아리를 통해 연극에 매력을 느끼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진학했다. “원래 전공인 디자인은 자본주의에 종속된 측면이 많았고, 연극은 더 자유로워 보였거든요.” 그러나 연극을 하면서 미술 전공은 장점으로 살아나고 있다. 그는 “연극이라는 소재로 미술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고 했다. 연극의 경직된 양식을 깨려는 그의 실험은 예술행위 자체에 비평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과 그다지 멀지 않다.
예술 실험에서 적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그가 연출가 중심의 전통적인 연극을 벗어나려는 것은 연기자와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독특한 연출 역시 사루비아다방이라는 전시장에 가장 적합한 전시방법을 고민한 끝에 만들어낸 결과다.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불성실해 보인다는 말도 들어요. 하지만 연극은 연출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의 의도를 밀어붙이기보다는 배우와 관객과 같이 숨쉬고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8월 14일까지. (02)733-044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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