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점 둔 내수경제 중추, 증시 불안…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번져
"시장 논리로 움직이는 시장 아냐" 외국인 투자자 급속 이탈 분위기
관치·통계 조작 의혹도 새삼 불거져 일각선 시진핑·리커창 세력다툼 해석
중국 주식시장이 반복되는 주가 폭락 속에 급속히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이달 초까지 한달 가량 이어진 주가 급락기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 가격 기능을 무력화하더니, 이제는 정부 증시 부양책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시장의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는 형국이다. 중국 경제당국의 최우선 정책 과제인 내수시장 활성화에서 중추를 담당하는 증시가 흔들리면서 시장의 불신은 중국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신뢰 잃어가는 中 증시부양책
28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상하이종합지수가 역대 두 번째로 큰 낙폭(-8.48%)을 보였던 전날 ‘블랙먼데이’ 사태는 중국 당국의 증시부양 의지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박인금 동부증권 연구원은 “중국 증시 부양책의 핵심인 증권금융공사의 주식 매입 자금이 거의 소진됐다는 관측이 주가 급락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달 초 증권사 대출 업무 등을 담당하는 증권금융공사의 자본금을 240억위안에서 1,000억위안(18조7,000억원)으로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주식시장에 자금을 투입해왔다. 이를 의식한 듯 중국 당국은 27일 장 마감 이후 증권금융공사의 주식 매입이 지속될 것이라고 발표,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28일에도 상하이지수는 전날보다 1.68% 떨어진 3,663.00으로 장을 마쳤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쏠림 현상이 심한 중국 주식시장 현실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은 언제든 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증권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투자자들이 활시위 소리에 놀란 새떼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거래 규모가 크다는 점도 중국 증시의 변동성을 키우는 취약점이다. 주가 급락기(6월12일~7월9일)에 35%나 줄었던 신용거래 잔액은 당국의 강력한 부양책에 편승해 예전 수준을 빠르게 회복하는 등 시장 상황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이 금리ㆍ지급준비율 인하를 포함한 추가 부양책을 구사할 것이란 전망이 높지만 효과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중국 정부가 다섯 번에 걸쳐 증시 개입을 단행했지만 주가반등 효과가 6개월까지 이어진 것은 한 차례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당국이 어느 정도 통제력을 미치고 있는 중국 국내 투자자와 다르게,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 증시에서 급속히 이탈하는 분위기다. 시장분석업체 EPFR에 따르면 중국 증시가 안정을 되찾은 이달 초순 강한 매수세를 보였던 글로벌 자금은 이달 중순 이후 매도로 전환해 지난주까지 80억달러(9조3,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여기엔 “시장 논리에 따라 매매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알렉스 왕 앰플캐피털 자산운용책임자), “정부가 운영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도널드 스트라즈하임 에버코어ISI 중국리서치책임자) 등 중국 증시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금리인상을 앞두고 달러 대비 위안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대중국 투자의 환차손 우려도 높아지고 있어 자금유출 흐름이 한층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中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불신감
중국 증시가 흔들리면서 중국 경제 전반에 대한 비관적 전망도 확산하고 있다. 중국 경제에서 주식시장의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지만,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내수경제 활성화 정책에서 주식시장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제성장이나 증시 모두에서 수출기업의 비중이 큰 한국과 달리, 중국은 경제의 70% 이상을 수출 및 투자에 의존하면서도 증시에선 금융서비스, 통신, 소비 등 내수업종이 시가총액의 70%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을 통해 내수기업 자금을 공급하고 가계(투자자) 구매력을 높이겠다는 중국 정부의 구상이 증시 침체로 근본부터 어긋날 수 있는 셈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증시를 통해 실물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중국의 유동성 공급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증시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 정부의 관제적 태도는 또다른 차원에서 중국 경제의 실상에 대한 의구심을 낳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 관료들이 전력회사에 수요 둔화 정도를 축소 보고하도록 지시했다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보도를 포함, 해묵은 중국 통계조작 의혹이 새삼 불거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시장에선 2017년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성과 부풀리기식 통계 조작이 횡행할 것이란 의심이 파다하다. 김정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2분기 성장률(7.0%)이 호조를 보였다는 발표가 나왔음에도, 시장은 이를 불신하며 오히려 전력사용량 감소, 구매관리자지수(PMI) 부진, 제조업체의 지난달 영업이익 감소에 주목하며 주식을 투매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기업이 발행한 위안화채권의 97%가 최고 수준의 등급(AAA 또는 AA)을 받았다며 중국 신용평가체제에도 의문을 표했다. 미국 회사채 중 AA등급 이상 비율이 1.4%에 그치는 것과 대비되는 신용등급 고평가 상황에 대해 WSJ는 “기업이 복수의 신용평가사로부터 등급을 받아야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은 한 곳에서만 받으면 돼 등급을 후하게 주는 신평사를 골라잡는다”고 지적했다. 증시 폭락을 두고도 “태자당 계열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청단 계열인 리커창 총리 세력을 꺾을 심산으로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폴 홋지 영국 pH리포트 선임연구원)는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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