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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주역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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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주역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입력
2015.07.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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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 6259장 분석

88%가 일제에 저항한 사상범

1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 넓고

사회적 소수자였던 여성들도 많아

고등학교 3학년 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 송계월(왼쪽 사진)의 수형기록카드. 수감자의 사진과 함께 이름, 죄명, 형량 등이 적혀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고등학교 3학년 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 송계월(왼쪽 사진)의 수형기록카드. 수감자의 사진과 함께 이름, 죄명, 형량 등이 적혀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일제강점기 서울 서대문형무소에는 15세 학생부터 72세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가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 갇힌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감자 분석 결과 남녀의 구분도 없었고, 함경도 출신이 더 많기는 하지만 대체로 전 지역에서 고루 참여했다. 평범한 모든 이가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다는 의미이다.

박경목(44)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장은 형무소 수형기록카드 6,259장을 분석한 결과 등을 담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연구’를 올해 1학기 충남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해 최근 심사를 통과했다. 서대문형무소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자 유관순ㆍ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9만여명이 수감돼 독립운동가 전용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곳이다. 1990년대 공개된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의 개별적 연구는 여러 차례 발표됐지만 카드 전체를 분석해 내용과 의미를 파악한 연구는 처음이다.

1919~1944년 작성된 수형기록카드에는 중복 인원을 제외하면 4,837명의 나이, 출신 지역, 죄명, 형량 등이 기록됐다. 죄명이 확인되는 4,630명 중 4,062명(87.7%)이 일제에 저항한 사상범이었다. 일제는 치안유지법, 보안법, 출판법,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 폭발물 취체법,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에 관한 제령 7호, 안녕질서에 관한 법 위반 및 불경죄, 소요죄 사범 등을 소위 사상범으로 규정하고 사상범 전용 감옥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시켰다. 이 중 독립운동가들을 옥죄는 데 광범위하게 적용된 치안유지법 위반이 2,745명(67.5%)으로 가장 많았고, 보안법 위반(1,171명), 국가총동원법 위반(479명), 소요죄(75명), 출판법 위반(47명) 등의 순이었다. 박 관장은 사상범으로 분류되지 않은 살인ㆍ강도ㆍ방화 등의 수감자도 무장투쟁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일 가능성이 높아 실제로는 사상범이 더 많을 것으로 추론했다.

또 나이가 파악된 4,377명 가운데 20대가 2,517명(57.5%)으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870명(19.8%)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15세 학생 11명을 포함해 10대는 462명(10.5%)이나 됐다. 또 50~70대 장년ㆍ고령층은 196명(4.4%)이었고, 최고령 수감자는 72세였다. 박 관장은 “일제에 대한 저항이 전 연령층에서 일어났으며, 10대가 참여할 정도로 이 시기는 한국인들에게 평범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여성들도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233장의 여성 수감자 카드 분석 결과 181명의 여성 중 148명(81.7%)이 사상범으로 분류됐다. 여성은 10대(64명ㆍ35.3%)와 20대(72명ㆍ39.7%)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독립운동이 지연과 혈연, 학연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드러났다. 주소가 적힌 4,481장의 카드 중 함경도 출신이 1,391명(31.3%)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가 1,140명, 경상ㆍ전라ㆍ충청ㆍ평안도는 평균 320여명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5명 이상이 동시에 수감된 경우도 17건, 115명이나 됐다. 형제나 부자, 부녀 등 가족이 함께 수감된 경우도 36가족, 74명이었다. 여고생 17명이 1930년 1월 서울 시내에서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서울 시내 여학생 만세시위 운동’을 벌이다 수감되기도 했다. 박 관장은 “중소도시에서의 독립운동은 지연과 혈연의 사회관계망 속에서 발생했고, 대도시에서는 학교가 각종 저항운동의 중심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1940년대 등장한 국가총동원법 위반 수감자 479명을 항일 활동의 범주에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박 관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일제의 식민지배가 평범한 사람들조차 저항해 감옥에 올 정도로 부조리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파악하게 됐다”고 자평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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