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되는 여자’, 즉 ‘아내’를 이르는 말에는 ‘안사람, 집사람, 처, 마누라, 부인’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가리키는 대상은 같지만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다.
‘아내’는 특별히 낮추거나 높이는 뜻이 없어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말이다. ‘처’는 20여년 전만 해도 흔히 쓰는 말이었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팔순이 넘은 어느 노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미 1960년대에도 ‘처’는 ‘머리를 쪽 찌고 치마저고리 입은’ 구식 아내를 연상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아내를 ‘제 처’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점잖고 예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안사람, 집사람’은 아내를 남 앞에서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지만 아내의 역할이나 활동 공간을 집안에만 한정하는 듯하여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누라’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적어도 중년 이상의 아내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에는 상대를 약간 낮잡는 느낌이 있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자기 아내를 허물없이 가리킬 때 ‘마누라’를 흔히 쓴다. 이 말은 어떤 상황에서 쓰느냐에 따라 정답게 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내를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가려 쓰는 게 좋겠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나이든 아내를 함부로 대했다간 노후가 편치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므로 자기 아내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우리말에서는 나와 가까운 사람을 남 앞에서 높이지 않는 것이 올바른 언어 예절이다. 아내를 존중해 주는 것은 좋지만 ‘우리 부인’ ‘내 부인’ 등으로 쓰는 것은 잘못이다. ‘청혼가’라는 가요의 노랫말에 ‘네가 나의 부인이 돼줬으면 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때 ‘나의 부인’도 ‘나의 아내’로 해야 맞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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