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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남성 육아휴가', 원조는 조선이었다?

입력
2015.07.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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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흔히들 칼에 비유한다. 사람을 내친다는 의미에서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법대로 해라는 말에서 짐짓 두려움도 느낀다. 칼 같은 이미지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런데 법은 꼭 그렇게 무서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법은 저 짙은 그늘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되어 주기도 한다. 법이 칼이 아닌 방패 혹은 갑옷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은 바로 이런 역할을 했던 우리의 옛 법들을 살펴볼까 한다. 어떤 이들은 조선시대를 그저 무능한 탐관오리들이 기생 끼고 제 살 길만 모색하다가 허구한 날 외침(外侵) 당하다 망한 시대로 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애민(愛民)의 시대였다. 왕들은 하늘의 이치를 살피지 않으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했고, 하늘의 이치를 살피는 일이 곧 백성을 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 애민에 가장 으뜸이셨던 분은 누가 뭐래도,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백성들이 쓰기 힘들다”며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세종대왕 시대에 생겨난 착한 법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1. 15세기에 130일의 출산휴가… 남성노비도 육아휴직을?!

조선 시대 지금보다도 더 잘 보장된 출산휴가와 육아휴가가 있었다니 믿겨지는가? 그것도 노비에게 말이다.

세종대왕은 노비의 출산휴가가 고작 7일인 것을 보고, 이를 안타까워했다. 제대로 산후조리도 못 하다가 목숨을 잃는 노비들이 허다했다. 그러자 세종은 당시에 노비의 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렸다.

이 뿐이 아니다. 세종은 그로부터 몇 년 후 산전 휴가 30일을 추가토록 하였다.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했다가 몸이 지치면 어떻게 하겠냐”며, 산기에 임하여 1개월의 복무를 면하게 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세종대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남편에게도 30일의 육아휴가 제도를 실시한다. “그 남편에게는 전연 휴가를 주지 아니하고 그전대로 구실을 하게 하여 산모를 구호할 수 없게 되니, 한갓 부부(夫婦)가 서로 구원(救援)하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 때문에 혹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어 진실로 가엾다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사역인(使役人)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로써 노비들은 산전 휴가 30일에 산후 휴가 100일까지 모두 130일의 출산 휴가가 보장되었고,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가 생겼다.

이 당시 세종 나이 29세였다는데, 어떻게 29세라는 청년의 나이에 이토록 백성에 대한 애정과 측은지심이 그토록 깊을 수 있는지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산전 산후 모두 합해 90일의 출산 휴가를 갖도록 규정되어 있다.

2. 죄수들이라도 인간답게!

세종의 애민은 죄수들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종은 죄수들이 관리들의 구호 소홀로 목숨을 잃을까 늘 염려하시어, 죄수를 구휼하는 방책을 올리도록 하였다. 즉 감옥시설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의정부에서 형조의 보고를 바탕으로 올린 안들이 다음과 같다.

- 옥을 지을 때 높은 대를 쌓아 그 위에 서늘한 옥 3칸을 지으면 바람이 잘 통해 여름에 더위로 고생하지 않는다. 특히 벽에는 틈과 구멍을 내어 바람이 통하도록 하겠다.

- 옥외에 햇빛을 막는 차양 시설을 해 더울 때는 낮에 이곳에 나와 자유롭게 앉거나 눕게 하고 밤에만 옥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 겨울에는 따뜻한 온옥을 만들겠다.

입성부족하고 먹을 것 부족한 그 시대에 세종대왕은 죄수들의 더위와 추위까지도 걱정하고 고민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 이런 왕께서 존재하셨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에 대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근거인 '공소사실 특정'도 조선시대에 발의된 내용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에 대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근거인 '공소사실 특정'도 조선시대에 발의된 내용이다.

3. 공소사실을 특정하라!

사법연수원에서 검찰실무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공소사실의 특정이다. 범죄사실을 적더라도, “몇 년 몇 월 몇 일”에 발생한 일인지를 되도록 정확하게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피고인에게 억울한 죄를 씌울 수도 있고, 피고인이 제대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어서 그렇다.

현재 홍준표 경남지사가 이른바 ‘성완종 사건’ 때문에 재판을 받으면서, 금품을 받았다는 날짜가 정확하게 특정되지 않았으므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세종대왕 시대에 또다시 획기적인 법안이 발의되었다 세종1년 형조에서 원나라의 왕여가 작성한 “무원록”(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는 책)을 근거로 건의를 올렸는데 내용인즉, 어떤 사건을 보고함에 있어 “금년, 전월, 금월”등의 막연한 표현을 쓰지 말고 “00년 00월 00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바로 공소사실을 특정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1400년대에 말이다!! 실로 소름 돋는 일이 아닌가.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없이 이런 정책 혹은 이런 법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오버스럽다고 생각될 지 모르지만, 필자는 세종대왕을 생각하면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난다. 우리 역사에 이런 왕이 계셨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해서 그렇다. 해동요순이라는 세종대왕의 별명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으니, 난 환생을 믿고 싶다. 바로 세종대왕 같은 분을 다시 맞이하고 싶어 그렇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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