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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으로 본 한국 현대사 세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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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으로 본 한국 현대사 세굽이

입력
2015.07.2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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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 展

김환기·백남준 작품 등 250점 망라

권영우의 1957년작 ‘폭격이 있은 후’는 동양화 기법으로 전후의 황량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권영우의 1957년작 ‘폭격이 있은 후’는 동양화 기법으로 전후의 황량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가로 길이가 6m에 이르는 한 그림 속,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포크레인과 인부들이 바삐 움직인다. 공사현장에는 새마을운동 깃발이 여럿 걸려 있다. 1970년대에 활동한 단색화가로 유명한 정창섭의 ‘경제건설’은 당시 청와대에서 발주한 근대 기록화다. 집권 세력의 산업화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전시장 맞은 편에 걸린 김혜련의 ‘동쪽의 나무’ 연작 16점과 대조를 이룬다. ‘동쪽의 나무’는 캔버스에 찢긴 자국을 내고 바느질로 다시 꿰내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자연의 생명력으로 치유하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상충되는 작품들이 내걸렸다. ‘한국현대사’라는 주제가 그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28일 시작되는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은 113명의 작품 250점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보여준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 근대 회화 작가들부터 백남준 전준호 박경근 최정화 등 현대의 영상ㆍ설치 작품까지 망라됐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 현대사를 세 고비로 나눠 보여준다. ‘소란스러운’은 분단과 전쟁의 고통을 의미한다. 시사만화 ‘고바우’의 작가 김성환이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종군화가로서 그린 전쟁기록화를 지나면 영상작가 전준호의 2008년작‘하이퍼리얼리즘-형제의 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 53초짜리 영상은 남북한 군인이 부둥켜 안고 있는 전쟁기념관의 조각상 ‘형제의 상’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떨어진 남북의 군인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허공을 떠도는 모습이다. 65년 전 김성환이 전장에서 겪은 고통이 후세대에 그대로 계승되는 거대한 미해결 과제를 남긴 것이다.

‘뜨거운’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한국의 ‘두 근대화’에 대한 열정을 뜻한다.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인 김구림의 ‘1/24초의 의미’와 박경근의 2013년작 ‘철의 꿈’이 나란히 상영되는 모습이 이채롭다. 1969년 서울의 풍경을 1초마다 바꿔 보여주는 김구림의 영상은 근대 산업사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금속이 조선소를 거쳐 대형 선박으로 만들어지는 웅대한 광경을 보여주는 박경근의 영상 역시 물신화된 문명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넘치는’은 세계화ㆍ정보화 시대 이후 범람하는 이미지와 이에 대응하는 작가들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해외에 있던 개인 소장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백남준의 ‘이태백’과 화려하게 채색된 패턴 위에 대중문화의 상징을 늘어놓은 홍경택의 ‘훵케스트라’ 등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소개됐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돼 많은 인기를 끌었던 김범의 ‘노란 비명 그리기’도 나왔다. “참 쉽죠?”라는 말로 유명한 밥 로스의 미술 교육방송을 패러디한 이 영상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림을 그리고 그 과정을 세세히 설명하는 작가를 통해 개념적 작품을 이해시켜야 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처지를 자조한다.

강승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전시의 세 주제는 각 시대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중첩해 전해지며 한국 미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과거의 기억이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10월 11일까지. (02)3701-950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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