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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건설 시도는 결국 지옥을…" 열린 사회 주창한 칼 포퍼

입력
2015.07.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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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Karl Raimund Popper)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판(1943년)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 안에서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에게 거친 말들이 퍼부어졌다면, 결코 그들을 깔아뭉개려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차라리 나의 이런 확신에 뿌리를 두고 한 소리다: 우리의 문명이 꺼지지 않고 계속 지탱되려면, 우리는 위대한 인간에 대해 그저 굽실거리기만 하는 버릇을 내던져 버려야 한다.”(이명현 역, 민음사)

포퍼가 작정하고 대든 ‘위대한 인간’은 플라톤과 헤겔과 마르크스였지만, 그들 사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피히테에 이르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더불어 짓뭉개졌다. 예컨대 헤겔이 ‘야바위꾼’이라면 피히테는 ‘허풍쟁이’였다.

자신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50년 2판 서문에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쓰겠다고 최종 결단을 내린 것은 38년 3월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던 날이었다.(…) 이 책의 대부분이 전쟁의 결과가 불확실하던 우울한 시기에 쓰인 관계로 지금 와서 보니 몇몇 비판은 나의 의도보다 더 감정적이고 더 거칠게 느껴진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할 시기가 아니었다.”(이한구 역, 민음사)

2006년 이한구는 “열린 사회의 적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복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적들이 사라지면 또 다시 새로운 적들이 나타날 수 있다. 배타적 원리주의, 닫힌 민족주의, 집단 열광주의, 독단적 교조주의 등이 모두 열린 사회의 잠재적 적들이다. 인류의 역사는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오랜 투쟁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열린 사회를 부정하는 자들은 항상 열린 사회가 정체성의 위험이 있으며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라고 비난해왔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새로운 문명의 긴장에 지친 사람들과 자유의 행사에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 여린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 왔다.”고 개정판 역자 서문에 썼다.

“인류의 역사는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투쟁의 역사”라는 말은 칼 포퍼의 진술이었다. 닫힘과 열림이란 비판과 수정 가능성에 대한 닫힘과 열림이다. 그는 인종 민족 계급 권위에 기반한 법칙의 왕국, 유토피아를 향한 필연의 왕국에 맞서 회의와 반증과 혁신을 딛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자유의 왕국을 옹호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 가운데 하나인 “지상 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비록 최고로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옥을 만들 뿐이다”는 1권 9장(탐미주의, 완전주의, 유토피아주의)의 마지막 문장이다. 80년대 중반까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법적 금서였다면,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조롱 당하지 않으려면 제목을 가리고 읽어야 했던 심리적 금서였다.

칼 포퍼가 1902년 오늘(7월 28일) 태어났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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