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열이 5집 ‘SYX’로 컴백했다. 과연, 음반은 이승열‘다운’ 음악들을 수록하고 있어 반가웠다. 그런데 잠깐, ‘이승열답다’는 표현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에 대해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이 글은 이승열이라는 뮤지션을 향한 또 하나의 러브레터가 될 것이다.
거칠게 분류하면, 뮤지션은 다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대중의 반응을 신경 쓰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물론 이 두 타입은 물과 기름처럼 갈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호작용하면서 더 빼어난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이승열이 어느 경계에 걸쳐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중의 호오에 반응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대중’ 뮤지션인지라 어느 정도의 팬덤 형성은 필수인 까닭이다. 자신의 음악이 팬들의 어떤 지점을 건드리느냐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계산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어느 정도 ‘본능적인’ 뮤지션이고, 이 본능을 음악으로 잘 다스렸을 때 이승열 음악의 걸작들은 탄생해왔다.
이유를 곱씹어본다. 아마도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일 것이다. 예를 들어 ‘기다림’, ‘비상’, 결정적으로 ‘미생’의 주제가로 사용되어 큰 인기를 모은 ‘날아’ 같은 노래들을 녹음하면서 “음, 이건 좀 뜨겠는데”라고 씩 웃으며 지레짐작하는 이승열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는 그저 충실하게 앨범 작업을 지속할 뿐이고, 그 뒤의 대중적인 피드백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관조하는 태도로 그저 응시할 뿐이다.
이번 이승열의 5집 앨범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난해함 그 자체였던 4집에 비해 확실히 심플하고 접근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그가 대중을 계산적으로 의식한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밀도 높고 직관적인 그루브가 돋보이는 첫 곡 ‘Asunder’를 들어보라. 이승열 음악 중 이렇게 댄서블한 비트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리듬 파트가 인상적인 이 곡은 ‘Asunder’라는 단어의 반복을 통해 흩어지는 듯 최면적인 효과마저 자아낸다. 나는 한 장의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1번곡이라고 맹신하는 쪽이다. 1번곡은 뭐랄까, 음반을 감상하기 위한 메인 엔진쯤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이 곡을 듣는 순간, “이번에도 승열님이 날 감동에 빠트리겠군.”하면서 내리 음반을 쭉 들을 수 있었다.
이후 이승열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 록, 일렉트로를 넘나들면서 다채로운 장르 소화력을 드러내고, 이를 질료로 삼아 모던하면서도 이국적인 그만의 세계를 일궈낸다. 그 중에서도 제목처럼 후반부에 강렬하게 폭발하는 ‘To Build a Fire’, 이승열 목소리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곡이자 비장미로 넘치는 ‘A Letter From’, 첫 싱글 ‘노래 1’ 등을 핵심으로 꼽고 싶다. 이렇게 외부의 존재 따위 상관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더 깊숙하게 일궈냈을 때 이승열 음악의 진가는 발휘된다. 반쯤은 누구이고, 반쯤은 또 다른 누구인 사람은 그 누구도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기가 원하는 예술가적 욕망에 그야말로 솔직하고 충실한 상태로 완성된 이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승열이라는 아티스트의 세계는 ‘날아’보다 훨씬 광대하고 드높다.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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