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번개와 천둥에 놀라 잠을 깬다. 번갯불을 보면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셋…’ 시간을 잰다. 빛의 속도는 계산에 넣지 않아도 좋을 만큼 빠르다. 소리는 초속 340㎙. 다섯까지 세었으니 상공 1,700㎙(340X5) 쯤에 있는 구름에서 번개와 천둥이 생성되었구나 하고 짐작한다. 밝은 번개와 큰 소리의 천둥이 있으면 굵은 빗줄기가 따라오는 것이 일반적.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는 대략 초속 20~30㎙. 가속도를 감안하더라도 굵어진 빗줄기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일주일쯤 전에 미국 우주항공국(NASA)이 태양계 내 명왕성의 사진을 찍어 공개하더니 이번엔 태양계 밖에서 ‘제2의 지구’라 할 만한 ‘지구2.0’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와 많은 조건이 엇비슷해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NASA는 흥분하고 있다. ‘지구2.0’은 태양보다 10~20% 더 크고 나이도 15억 살이나 많은 항성에 딸린 행성이다. 공전 주기가 385일이고 지름이 지구의 1.6배라고 하니, ‘형님 지구’라 할 수 있겠다.
▦여름 하늘을 수놓는 은하수의 백조자리에 ‘형님 지구’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백조자리는 서양신화 속엔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의 사연이 녹아 있고, 우리의 전설에는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다리(오작교) 모습으로 걸쳐 있다. 백조자리가 ‘한여름 밤의 꿈과 사랑’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문제는 좀 멀다는 점이다. ‘형님 지구’까지 인류가 발명한 최고속 비행체인 뉴호라이즌스호가 계속 날아가도 2,500만 년 이상, 빛의 속도로 순간이동 하듯 달려도 1,40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 ‘형님 지구’의 생명체가 태양계의 ‘동생 지구’를 포착했다면 어떨까. 1400년 전 지구의 모습을 그곳에서 보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와 교신을 하려고 모종의 사인을 보낸다면 다시 1400년이 지나서야 지구에 도착하게 되는 것 아닐까. 거꾸로 이번에 케플러 망원경이 포착해서 그려낸 ‘형님 지구’의 모습도 1400년 전의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소리의 속도, 빛의 속도, 광년(光年)이라는 거리…. 여름 밤 하늘 아래 우리는 너무도 짧고 작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