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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인간의 지배권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15.07.2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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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5월 역사에 길이 남을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 또는 Praise Be)를 발표했다. 프란치스코로 교황명을 선택한 이유를 그는 이 회칙에서 설명한다. 교황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평생 즐겁게 또 진심으로 약자들을 돌보는 한편 완전한 생태계를 실천했던 탁월한 예”라고 여겼던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연에 대한 관심이 가난한 자를 위한 정의, 사회적 책무, 개인의 내적 평화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회칙의 제목은 성 프란치스코가 쓴 노래 ‘태양의 찬가’와 관련이 있다. 세상 만물에 있는 하느님을 찬미한 이 노래는 로마가톨릭 전통에서도 환경 전체주의를 표현한 최상의 작품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선 ‘태양 형제’(Brother Sun)와 ‘달 자매’(Sister Moon)에 대한 찬미가 자연숭배와 매우 가깝게 느껴져 주류 가톨릭 사고에 어긋나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이제 그런 의심은 사라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 베네딕토 16세는 교회가 환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는 일을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더욱 깊숙이 밀어붙이고 있다.

‘찬미를 받으소서’는 많은 매체의 관심을 받았다. 대체로 그 관심은 새 회칙이 기후변화에 대한 조치를 단호하게 요구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적절한 현상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세계 12억 로마가톨릭의 지도자가 최근 수십 년간 일어난 “대부분의 지구 온난화”가 “주로 인간 활동의 결과로 배출된”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과학 연구를 분명하게 말해왔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회칙에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 부분도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성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에 속하는데 그건 동물의 친구라는 명성 때문이다. 그러한 전통을 감안하더라도 ‘찬미를 받으소서’는 교황이 회칙처럼 권위 있는 문서로 발표한 성명 중 동물 학대를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동물에 관한 주류 기독교의 사고방식은 창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인간이 모든 동물을 지배하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그 구절을 해석했다. 우리 멋대로 동물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유일한 이유는 그런 행동이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부 기독교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인류에게 우주만물을 돌보게 맡겼다고 시사하면서 ‘지배권’을 ‘관리’로 재해석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환경주의자와 동물 보호주의자에게 옹호 받는 소수의 견해에 불과했다. 아퀴나스의 해석은 20세기 후반까지 가톨릭 교리를 지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독교인들이 “종종 성경을 잘못 해석해왔다”면서 주류 시각을 단호하게 반대해 왔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고 하느님에게 지구 지배권을 넘겨받았으니 다른 피조물에 대해 절대적 지배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배권’이 ‘책임감 있는 관리’로 이해돼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교황의 이런 주장은 거의 2,000년간 계속해서 가톨릭 사상이 ‘인간의 지배권’을 말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혁명적인 변화다. 하지만 새 회칙에는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언급이 있다. “동물이 불필요하게 고통 받거나 죽게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한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원래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가톨릭 교회 교리문답서에 처음 나왔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생각이 주목 받을 수 있도록 트위터에 이 내용을 올렸다(알다시피 프란치스코 교황은 @Pontifex라는 계정으로 트위터를 한다).

고통과 죽음은 언제 ‘불필요’한가? 고기를 먹지 않아도 적절하게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면 고기를 사는 일은 불필요하게 동물을 죽게 하거나 최소한 일조하는 건 아닐까? 조그마한 닭장에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꽉 채워진 채 불행하게 살아온 암탉이 낳은 달걀을 사는 것은 불필요하게 동물을 고통스럽게 하거나 거기에 일조하는 건 아닐까?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되기 전 인터뷰에서 “새의 캐리커처밖에 안 될 정도로 지나치게 꽉 채워진 채” 사는 암탉처럼 “동물을 산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개탄했다. 불행하게도 현재 수백억의 닭이 이렇게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사실 인간의 영역에는 불필요하게 고통 받는 동물들이 가득하다.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이 된 뒤 동물 옹호론자들은 동물 복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언급해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는 절대 반복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경제적 이익이나 무분별한 착취 앞에 속수무책인 약하고 무방비 상태의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공장식 축산으로 키워지는 동물들을 가리켰던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를 받으소서’에서 예수가 새들을 가리키며 “하느님 앞에서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고 말한 누가복음 구절을 인용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동물을 학대하거나 해를 입힐 수 있겠나”라고. 좋은 질문이다. 왜냐면 우리는 실제로 동물을 학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대부분의 로마가톨릭 신자들은 이러한 학대에 동참하고 잇다. 일부는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해 동물의 복지를 줄이는 방법으로 닭과 오리, 타조를 키우고, 나머지 대다수는 공장식 축산물을 구매한다. 내 생각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걸 바꿀 수 있다면 최근 역사 속 다른 어떤 교황보다 더 좋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ㆍ윤리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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