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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세금, 필요하면 올려야

입력
2015.07.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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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ㆍ법인세 정비 여야 합의 큰 의미

신자유주의 세정 벗어나는 전환 기회

사회통합 차원 부자 소득세 인상 필요

어제 추경안 국회 처리에 앞서 이루어진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 문제에 관한 여야 간의 정치적 타협은 어찌 보면 매우 희한한 일이다. 어떤 정부든 재정이 부족하면 세금을 더 거둬서라도 곳간을 넉넉히 채워두고 싶은 게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를 뒷받침하는 여당은 오히려 증세를 피해 뒷걸음질을 치는 형국이었고, 거꾸로 야당이 나서 증세를 고집하면서 추경안 부대의견에 ‘소득세ㆍ법인세 등의 정비’라는 문구를 넣기에 이르렀다.

증세를 둘러싼 희한한 풍경은 비단 이번에만 벌어진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무상보육 예산 갈등 등 재정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부분 주요 언론도 증세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요컨대 통치세력은 세금을 못 올리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통상 무거운 세금에 저항해야 맞을 법한 비판세력이 거꾸로 제발 세금을 올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묘한 상황이 계속돼왔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건 단순히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세정(稅政)을 정상화 하고 쓸데 없는 지출을 줄여 알뜰하게 나라살림을 꾸리면 국민의 추가 부담 없이도 복지재원을 감당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이 정부의 증세 불가론을 뒷받침한 건 맞다. 그러나 더 깊은 배경에는 세정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근본적인 시각차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차별성이 많이 희석됐지만, 그나마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게 세정이다. 마거릿 대처 영국 보수당 정부 이래 각국 보수 정권의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 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나타내왔다. 그런 맥락에서 통상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세정에서도 세금 부담을 최소화 하여 민간 경제에 활력을 주는 방식으로 민생을 향상시킨다는 전략을 추구해왔다. 박근혜 정부가 애써 증세를 피해왔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반면 진보 정치권은 세금을 줄여 민간 경제가 부양돼도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공정한 성과 배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큰 정부’를 지향하며 세금을 최대한 많이 거둬 정부가 복지정책 등을 통해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국내외 진보 정치권이 대부분 증세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현실은 이런 이분법적 이론과 전략보다 훨씬 복잡다기하게 전개되고 있다. 자본의 국경이동이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정부가 공정한 성과 배분에 치우쳐 세금을 올릴 경우, 국내 자본(생산기반)까지 유출되기 십상이다. 근년 들어 세계 각국이 다투어 법인세를 낮추는 이유다. 반면 세금과 규제를 줄여 민간 경제를 활성화하는 쪽에 방점을 두다 보면, 경제는 성장하되 부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진다. 미국 차기 대권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최근 중산층 임금인상 정책을 들고 나온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부작용의 해소 노력인 셈이다.

진보든 보수든, 세정이 유연하게 수정되고 있는 글로벌 현실을 감안할 때, 박근혜 정부도 이젠 증세 불가론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적극적 규제완화 등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주면서도 적절한 증세를 통해 재정을 보강하고, 나아가 부의 양극화로 증폭된 사회갈등을 완화하는 세정을 가동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더욱이 지금은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천명할 때 전제했던 경제 예측이 크게 뒤틀린 상황이다. 이미 경제 살리기를 통한 자연스런 세수 증대가 요원해진 상황이다. 세출 구조조정 역시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출을 줄이긴커녕 불황으로 오히려 확장적 재정 운용으로 쓸 곳이 더 많아졌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여야의 이번 ‘소득ㆍ법인세 정비’ 합의는 정부ㆍ여당으로서도 정치적 부담 없이 필요한 증세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에 가깝다. 불황이 이어지고 기업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법인세까지 손 대기 어렵다면, 우선 소득세율 조정이나 자본이득세 강화 등을 통해 부자 소득세라도 높이는 전환적 세정을 준비하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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