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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역지사지 모르는 외눈박이 日本

입력
2015.07.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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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교 50주년 행사를 계기로 찾아온 관계복원의 기대감이 세계문화유산 협상 후 잦아든 건 아쉽다. 이달 초 유네스코에서 양국은 ‘군함도’(端島ㆍ하시마 탄광) 등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에 대해 ‘forced to work(노동을 강요당했다)’란 문구로 합의했다. 세계유산회원국 앞에서 명시한 결정문이지만 자국으로 돌아간 일본정부는 물타기에 나섰다. 일본에선 결국 “강제로 노역을 했지만 강제노동은 아니다”는 얘기가 돼버렸다.

역지사지를 모르고 외눈박이로 빠져들면 세상과 멀어진 채 자신만 미화하게 된다. 이번 한일대립과 비슷한 장면이 그로부터 두 달 전 미국에서 벌어졌다. 특정문구를 국제공신력을 갖춘 합의문에 넣으려 필사적 외교를 펼친 쪽이 이번엔 일본이었다. 5월 뉴욕 핵확산금지조약(NPT)회의에서 일본은 전후 70년을 맞아 각국 지도자가 원폭투하도시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방문할 것을 권하는 내용을 포함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복병이 등장했다. 중국측 푸충(傅聰) 군축대사가 일본이 자국을 2차 세계대전 가해국이 아닌 피해국으로 둔갑시키려 한다며 반대해 초안에 있던 문구가 삭제되고 말았다. 피해지역 경험을 공유하자는 선에서 조정되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란 지명을 넣으려던 일본의 뜻은 좌절됐다.

지난해 말 미국에선 1940년대 극비 원자폭탄 개발계획이던 ‘맨해튼 프로젝트’관련 3개 시설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일이 있었다. 원자탄연구소와 플루토늄 제조소가 모여있는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를 비롯해, 워싱턴주 및 테네시주 지역들이다.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시장이 원폭투하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며 주일미국대사관에 즉각 항의했다. 현장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어두운 역사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고 분노를 쏟아냈다.

어디서 본듯한 일은 계속 있다. 바로 지난주 16일 히로시마에선 1945년 8월6일 당일 원폭을 당한 카지모토 요시코(梶本淑子ㆍ84) 할머니가 런던의 국회의사당과 인터넷 화상통화를 했다. 이 할머니는 핵 보유국인 영국의 상하원의원 80명에게 통역을 통해 참혹했던 피폭체험을 절절히 털어놓았다. 평화를 역설하며 질의응답도 했다. 여기서 한국인이라면 일본우익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나 해외활동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이제 곧 8월이다. 매년 이맘때 일본사람들은 전쟁을 떠올린다. 패전의 슬픔이나 괴로움, 종종 피해자로서 스스로에 대한 동정심에 빠지는 게 이곳 분위기다. 전쟁으로 치달았던 그 해, 왜 가혹한 여름을 맞았는지, 주변국 이웃에 끼친 피해는 어땠는지 잊기 쉬운 게 일본 풍토다. NHK가 소년병, 가미가제특공대, 일왕 항복방송(일명 ‘옥음(玉音) 방송’)을 소재로 한 영상물을 준비 중이고, 히로시마 증언으로 구성한 ‘버섯구름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란 특집도 방영된다.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침략에 대한 사죄를 거부하는 가운데 이들 프로그램 역시 역사를 미화한다는 지적을 피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시선을 돌려보면, 일본을 비판하려면 역설적으로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유독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원폭피해에 대해선 우리를 침략한 나쁜 인간들을 응징했다는 감정만으로 귀를 막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식민시절 일제의 만행과 비교도 할 수 없다며 외면하는 게 옳은지 이젠 되돌아볼 때도 됐다. 인류보편의 관점에서 대응해야 적반하장의 일본을 비판하기 쉽다.

그것이 위안부 피해자를 지지하는 일본시민단체, 세계유산 시설에 강제노동의 역사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양심, 펄펄 끓는 도쿄 국회의사당 앞 아스팔트에서 “전쟁법안 처리 반대”를 외치는 그들이 우익들과 싸울 근거를 뒷받침해줄 수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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