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근대 계몽사상가이자 1만엔 지폐 속 인물 후쿠자와
정치사상가 마루야마에 의해 자유주의자로 각색된 과정 파헤쳐
근대화를 부국강병으로 둔갑시킨 '제국주의자 민낯' 日 지식인의 고발
“조선의 멸망이야말로 그들의 행복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이다.”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다.”
혐오로 점철된 이 발언의 주인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근대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ㆍ1835~1901)다. 물론 1만엔권 화폐 속 인물인 그는 일본에서 근대화의 아버지, 천부인권론자이자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통한다. 가장 사랑받는 그의 언명은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는 것. 이 같은 괴리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야스카와 쥬노스케(安川壽之輔)는 전후(戰後) 일본의 사상사 연구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미화된 후쿠자와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헤쳐온 연구자다. 그는 이 허구적 신화를 구축한 장본인으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ㆍ1914~1996)를 지목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야스카와의 저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는 2003년 일본에서 출간돼 학계에 충격을 안겼다.
일본 정치사상가인 마루야마는 학계의 천황으로 불릴 정도로 추앙받은 학자다. 전후 일본은 패전의 결과와 군국주의에 순응한 일본인의 국민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또 다른 나라에서는 시민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일본은 패전의 결과물로 획득하게 된‘민주주의의 패취(敗取)’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놓고 대혼돈에 빠졌다. 이때 마루야마가 들고나온 것이 후쿠자와.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영웅적 면모 즉 ▦독학으로 영어를 배워 미국과 유럽을 순방한 뒤 게이오대를 설립했으며 ▦메이지 정부의 등용요청을 사양하고 교육, 저술에 몰두한 점 ▦계몽지식인으로서 부국강병과 자유주의를 설파한 점 등을 강조하며 일본사상사를 새로 썼다.
후쿠자와의 존재는 일본인에게 “우리에게도 이런 자유사상가가 있었다”는 해갈을 안겼고, 그는 곧 근대화와 자유주의의 심벌로 자리잡았다. 그의 침략주의적 사고는 경시되거나, “열강의 일원으로 미련한 이웃과 어울리지 않고 열강이 그들을 대하듯 한 것일 뿐”이라고 이해됐다.
하지만 야스카와는 철저한 사료분석과 고증을 통해 일반 국민을 ‘병신’으로 칭했던 후쿠자와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후쿠자와는 “일본 국민의 유순함은 집에서 기르는 비쩍 마른 개와 같다”며 이런 노예적 습관이 추후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후쿠자와야말로 제국신민 형성에 선구적 역할을 한 근대 일본 최대의 보수주의자였다는 것.
일본의 두 정신을 정조준한 도발에 일본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저자가 이런 주장을 처음 펼친 1970년대엔 냉담했지만, 마루야마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인 2003년 이 책이 출간되자 마루야마의 제자들로 포진된 학계는 어떤 반박도 내놓지 못했다.
한국어판 역자 이향철 광운대 교수는 “이 책은 패전 후 도대체 일본 지성이, 학계가, 정부가 어떤 허상을 추앙했고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왔는지에 대한 대답”이라고 했다.
야스카와가 이토록 후쿠자와 신화를 집요하게 해체해온 것은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를 찬양하고 이용하는 세력이 아베 신조 수상 등 우익이기 때문이다. 야스카와는 여전히 후쿠자와를 민주주의 신봉자로 보는 시민사회의 오해를 기회 삼아 우익들이 전쟁국가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고 봤다.
근대화의 본령을 ‘개인의 해방’ 대신 ‘부국강병’으로 둔갑시킨 후쿠자와가 ‘일본 극우파의 스승’으로 다시 21세기에 소환되고 있는 오늘 날, 야스카와의 경고는 일본과 세계에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이 일본 최대 보수주의자를 어떻게 넘어서고 극복할 것인가. 전쟁 책임문제를 방치해온 일본이 전후 민주주의 재생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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