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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승리! 대기업이 장악한 영화계 질서 깨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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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승리! 대기업이 장악한 영화계 질서 깨뜨리다

입력
2015.07.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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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감시자들·변호인… 대기업 매너리즘식 결정 탈피 주효

개성 있는 작품 선택으로 흥행 돌풍… 고속 성공에 차별화 사라질까 우려도

2013년 투자배급사 NEW(뉴)는 흥행 행진을 거듭했다. 연초 개봉한 ‘7번방의 선물’이 1,281만1,213명을 동원했고 5월 스릴러 ‘몽타주’가 209만 관객을 맞는, 우수한 흥행성적을 올렸다. ‘신세계’(468만2,492명)와 ‘감시자들’(550만8,017명)이 흥행 바통을 이어받더니 여름 시장에선 ‘숨바꼭질’(506만4,106명)이 잭팟을 터트렸다. 기적 같은 흥행 성과를 이어가자 과연 뉴의 흥행 행진이 언제 그칠지 내기를 거는 영화인들까지 나타났다. 뉴는 그 해 ‘변호인’(1,137만5,944명)까지 흥행시키며 기록적인 한 해를 마무리한 뒤 CJ E&M 영화부문을 제치고 한국영화시장 배급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일대파란이었다.

뉴는 2010년대 충무로를 휩쓴 태풍의 눈이다. 2008년 8월 설립돼 일본영화 ‘20세기 소년’(18만3,069명)을 첫 배급하며 존재를 알렸다. 미풍으로 시작했으나 금세 돌풍으로 커졌다. 2009년 배급시장 6위에 오르더니 2010년 ‘헬로우 고스트’(301만9,960명)를 발판 삼아 대형 투자배급사로 발돋움했다. 2011년 3위로 뛰어오르며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오리온그룹 계열) 등 대기업 계열 빅3가 지배하던 영화시장에 균열을 일으켰다.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힌 투자배급사

한국일보 설문조사에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영향력 7위에 오른 김우택(51) 뉴 총괄대표는 지난 7년 동안 뉴의 기적 같은 실적의 중심에 서있다. 뉴를 설립하고 지휘하며 대기업 자본이 지배하던 충무로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뉴를 “한국영화 투자배급사의 또 다른 대안”이라고 평가한다.

뉴를 대기업 자본이 장악한 영화시장의 대안으로 만들어낸 김 대표의 최대 강점은 ‘좋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다. 회사 성장의 발판이 됐던 영화 ‘헬로우 고스트’와 ‘7번방의 선물’ ‘변호인’ 등은 대기업 계열 대형 투자배급사로부터 외면 받은 뒤 뉴를 찾아 대박을 친 작품들이다. 김영진 명지대 뮤지컬학부 교수는 “획일화된 영화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개성이 뚜렷한 작품들을 선별해내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의 좋은 선구안이란 따지고 보면 대기업 계열사의 매너리즘과 관료제적인 의사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뜻이다. 빅3 투자배급사들이 유명 감독이 아니다, 대형 스타가 없다, 최신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투자를 꺼렸을 때 뉴는 나름의 장점을 보고 과감히 손을 내밀었다. 뉴가 배급한 영화들은 늘 최고 수준의 영화는 아니었더라도 한국영화를 내용적으로 보다 다양하게 확장하는 데에 확실히 기여했다. 김 대표를 두고 “CJ 중심의 영화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인물”(이홍철 FE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충무로의 독립적 자본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준다”(김난숙 영화사 진진 대표)는 평이 나오는 게 이런 이유다.

전문 경영인의 충무로 홀로서기

김 대표는 당초 엔터테인먼트 산업과는 무관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대 경영대학원 석사학위(MBA)를 취득한 그는 삼성물산에서 직장 이력의 첫 줄을 썼다. 1996년 오리온그룹으로 이직한 뒤에도 충무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리온그룹의 케이블채널 회사 온미디어에서 일하다 98년 대우그룹으로부터의 멀티플렉스 메가박스 인수 작업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메가박스 상무를 거쳐 대표에 올랐고 투자배급사 쇼박스 대표도 겸했다. 전문경영인이었던 그는 쇼박스와 메가박스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1,000만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2003)와 ‘괴물’(2006)을 투자배급하며 CJ엔터테인먼트(현 CJ E&M 영화부문)과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오리온그룹 사상 최연소(37세) 임원 등 회사원으로서 성공시대를 열었던 김 대표는 홀로서기에 나선 뒤에도 빛나는 이력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뉴를 영화 배급시장 3위에 올리며 충무로 빅3 체제를 빅4로 재편했다. 극장체인이나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계열사의 물량 공세에 맞서 영화계에 제3지대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엔 뮤지컬 ‘디셈버’를 제작하고 가수 린과 인기 그룹 스윗 소로우, 엠씨더맥스를 영입해 매니지먼트와 공연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상장과 중국, 새로운 도전

뉴의 가파른 성장은 지난해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였다. 흥행작은 줄었고 성과가 저조한 작품이 늘었다. ‘인간중독’과 ‘해무’ ‘빅매치’ ‘패션왕’ 등을 내놓았으나 관객의 많은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뉴는 극장 밖에서 성장의 또 다른 정점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 중국 거대 미디어회사 화책미디어로부터 535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내며 국내 엔터테인먼트업계에 중국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대기업 계열이 아닌 영화사가 오직 실적을 바탕으로 코스닥에 상장하는 매우 드문 성과도 이뤘다.

뉴는 올해 들어서 성장 엔진을 재가동하고 있다. 신예 이병헌 감독의 청춘물 ‘스물’로 304만 관객을 동원했고, 지난달 개봉한 ‘연평해전’으로 600만명에 육박하는 흥행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스타작가 김은숙이 극본을 쓰고, 배우 송중기 송혜교가 출연하는 ‘태양의 후예’(12월 KBS2 방송 예정)를 제작하며 TV드라마 시장에도 진입했다.

뉴의 성장은, 지금까지 성공을 가능케 한 장점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역설을 남긴다. 상장기업으로서 단기 실적 압박을 받을 수 있고, 중국기업과의 관계 설정이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관료적이지 않은 발 빠른 의사결정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영화사 대표는 “김 대표가 상장 등으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자본을 축적해 공격적인 행보가 주목된다”면서도 “기존 대기업과 차별화됐던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 등이 사라지면 뜻밖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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