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前 법제처장 책 출간
“사마천은 역사는 언제나 정의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인생에 빗대어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신을 갖고 정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이어져왔다는 것도 얘기하고 있죠.”
최근 중국 전한시대 역사가이자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이라면 현재 우리사회를 어떻게 볼까, 즉 사마천의 눈으로 본 우리사회를 그린 '사마천 한국견문록'을 낸 이석연(61) 전 법제처장은 2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사마천에 주목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전 처장은 “사마천은 바른 말을 한 죄로 궁형에 처해지는 기구한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서 올바른 사람이 승리하고 대접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면서도 노력하며 좌절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 민중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학자”라고 평가했다. 2100년전 민중을 역사에 끌어냈다는 점이 파격적인 발상이며 사마천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전 처장은 “사기는 3000년간 중국역사를 다뤘지만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며 “사기의 예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어린 학생들을 버리고 자신만 살려고 한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나 재난 예방과 피해 최소화에 실패한 메르스 사태 등은 한(漢) 무제 때 이기적인 관리인 왕온서의 사례와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한다. 그는 “사람들을 도구로 보고 백성의 안위와 고통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이익을 도모한 왕온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면서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무사유’ 속에서 발생하는 악의 평범성의 예”라며 “특히 국민의 생명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담당자들 정치인들은 이 악의 평범성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정보의 선점문제다. 진나라 환관 조고가 정보를 이용해 조정의 실권자가 다루는 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핵심정보 선점을 통한 권력 획득과정과 맞물린다. 그는 “정보의 선점, 생산, 통제를 통해 권력과 기업이 정권 재창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이번 국정원 해킹도 정보선점을 둘러싼 문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고 하지만 오히려 통제 당하고 감시 당하는 고도의 장치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 전 처장이 사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꽃과 열매를 보러 사람들이 모여 나무 아래 저절로 길이 난다는 뜻이다. “마지막까지 귀감이 된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은 초심을 지키면서 자신의 할말을 다 한 분들인데 우리 사회에는 존경 받을 원로가 없습니다. 설령 불이익을 받고 어렵게 살더라도 본인의 소신을 일관성 있게 지켜나가는 분들이 제대로 평가 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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