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로마노 수사는 여러 해 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을 찾았을 때 만났던 수도자다. 그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처음 찾았던 수도원에서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멋진 건물이나 수도원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노동하는 수사들이었다. 김 수사가 하는 일은 낡은 책을 손으로 다시 제본하는 것이었다. 오래 되어 제본이 망가지고 표지가 찢어진 책을 바늘로 꿰매고 풀로 붙여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손 제본은 바로 옆, 최신 인쇄공장에서 굉음을 내며 쏟아내는 책의 번쩍이는 제본과 모든 것이 달랐다. 며칠에 걸쳐 한 땀 한 땀 바늘로 꿰매고 풀로 이어 붙인 책은 소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단단했다. 그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 이 일을 위해 독일 수도원에서 몇 년이나 배웠다고 했다.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동안은 배워야 한다고도 했다.
기도와 노동이 전부인 수도원에서 이런 노동을 하는 이는 김 수사뿐만 아니었다. 금속공예를 하는 강 고르넬리오 수사는 망치로 동판을 수천, 수만 번 두들겨 성물을 만들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는 김 플라치도 수사는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지를 오가며 10년 이상 일을 배웠다고 했다. 작은 목공방에서 기계 목공을 거부한 채 굳이 수공으로 가구를 만드는 수사도 있었다. 속도와 효율이 신으로 군림하는 시대, 수사들도 빠른 속도로 편하게 많은 것을 생산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수공을 고집하며 긴 세월 동안 일을 배우고 느리게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50대 중반이 된 나이 탓인가, 인생 2막을 시작한 옛 동료나 선후배들을 자주 만난다. 대개는 전직과 비슷한 일을 찾아 직장을 바꾸지만 아예 다른 삶을 택한 이들도 드물지 않다. 다른 삶의 사례로 흔한 게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것이리라.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예속되고 파국적인 삶에서 벗어나 내 삶을 내가 살자는 것이다. 입시, 취업, 승진을 향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내달려온 외길을 버리고, 가난과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삶의 통제권을 되찾자는 것이다.
귀농, 귀촌에 버금가게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 목수다. 홍천에서 나무 가구를 만드는 한 목수는 전직이 작가이고, 남양주에서 잘 알려진 목수는 전직이 평론가다. 신문이나 방송 기자를 하다 목수가 된 이도 있고, 교사를 하다 공방을 차린 이도 있다. 알다시피 목공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을 내 손으로 창조하는 기쁨을 넘어선다. 매 공정, 매 순간마다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머리의 지혜와 손발의 경험과 온 몸의 힘을 조화시켜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를 매만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목공 삼매에 빠져든다. 창조의 기쁨과 몰입의 즐거움, 그리고 성찰의 충만함이 함께 하는 일로 목공만한 것도 흔치 않다. 문제는 누구나 수도사가 되거나 귀촌, 귀농을 하거나 공방을 차리며 다른 삶을 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 오래 꿈꾸어 왔던 목공 교실을 시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용 공방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습은 목공 일을 배우며 공동체에서의 인문학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한 청년 목수의 공방에서 진행한다. 목공도 그 청년이 지도한다.
공동체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직장인이나 의사, 건축가, 작가 등이 철학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듯이 목공을 하는 이들도 모두 목수가 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목공을 배우는 이들은 수도원에 왜 단순하고 느린 노동을 하는 공방이 있는지,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예수의 직업이 왜 목수였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를 매만지며 쫓기듯 내달리기만 해온 삶을 돌아보며 다른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과 머리가 하나가 되어 삼매에 빠지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목공은, 최고의 인문학이기도 하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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