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7월 23일은 그리스 7년 군정이 종식된 날이다. 시민들은 이듬해 국민투표로 왕정을 폐지했고, 헌법 위에 새 민주공화정부를 수립했다. B.C 338년 마케도니아에 정복된 이래 1832년 독립하기까지 2000년이 넘는 세월을 제국(로마-비잔틴-오스만)의 속국으로 지내야 했던 나라. 독립 후 왕정-공화정-왕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유럽 열강의 사실상의 지배 하에 있었고, 두 차례 대전과 내전(1944~49년), 또 군정(1967~74)을 겪어야 했다. 2차대전 이후 열강이 외국의 내정에 처음 개입한 국가도 그리스였고, 트루먼 독트린으로 공식화한 동서 냉전의 첫 전장도 그리스였다.
2차대전 중 나치에 맞서 그리스 본토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은 그리스 공산당이었다. 군사조직인 좌파 민족해방전선(EAM)과 그리스인민해방군(ELAS)은 수적으로 보나 시민들의 지지로 보나 우익 망명정권을 압도했다. 연합군이 진주하기 전 국토를 수복한 것도 그들, 빨치산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처칠을 업은 망명 정부는 거국 내각에서 공산당원을 전면 배제했고, 해산 명령에 불응한 좌파 군대의 저항(그리스 내전)을 영국군의 힘으로 제압했다.
그리고 이어진 좌파에 대한 처절한 백색 테러와 투옥, 감금. 전후 경제적 부담에 허덕이던 영국이 47년 2월 그리스 철군을 결정하면서 미국이 뒤를 이었다. 그리스 적화(赤化)를 막기 위한 우익 정부 원조였다. 한 달 뒤인 3월 12일 미 의회에서 트루먼은 “나는 무장 소수 집단과 외부 세력이 자유민을 복속시키려 덤벼들 때 그에 저항하는 이들을 돕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연설했다. ‘트루먼 독트린’으로 역사에 남은 저 연설에서 트루먼이 말한 ‘무장 소수’란 그리스(와 터키)의 좌파군사조직이고, ‘외부’란 두말할 것 없이 구 소련이었다. 미국이 지키려 했던 ‘자유민’은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 그리고 지중해 제해권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리스 정부의 부패와 혼란의 끝 역시 미국을 배후에 둔 군사쿠데타였고, 흔히 ‘대령들의 정권’으로 불리는 그리스 군정의 시작이었다. 다시 시작된 백색테러와 감금, 고문…. 그리스 군정 고문기술자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영화 ‘당신의 이웃집 아들’(요르겐 플린트 페델슨 감독, 1982년작ㆍ사진)이 96년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군정 종식 후 그리스는 80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고, 81년 EU(유럽연합)에 가입했고, 2001년 유로화를 채택했다. 유럽 최약체국 그리스는 그 길이 번영의 길이라 여겼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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