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 LPGA 마라톤 클래식 우승, 공동선두 장하나와 연장전서 접전
데뷔 7년 간 준우승 세 번이 전부, 우승 놓치면 "아빠 캐디 탓" 듣기도
한국 선수들 LPGA 11승 최다 타이
‘가족의 힘’ 보여준 최운정 LPGA 157경기 만에 첫 승
최운정(25ㆍ볼빅)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총상금 150만달러) 우승 뒤에는 묵묵히 딸의 곁을 지킨‘키다리 아버지’가 있었다.
최운정은 20일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이랜드 메도우스 골프클럽(파71ㆍ6,512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기록해, 장하나(23ㆍ비씨카드)와 최종합계 14언더파 270타로 공동 선두가 돼 연장 승부를 벌였다. 최운정은 18번 홀(파5)에서 열린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파를 지켜, 보기에 그친 장하나를 따돌리고 LPGA 투어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최운정은 2009년 데뷔 후 156경기에서 우승이 없다가 157번째 경기에서 마침내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우승 상금은 22만5,000달러(2억5,000만원)다.
7년 간 우승을 기다린 최운정의 뒤를 지킨 건 아버지 캐디 최지연(56)씨다. 경찰관 출신인 최씨는 최운정이 LPGA 2부 투어에서 뛰던 2008년부터 8년간 캐디를 맡았다. 8년 동안 최운정이 아버지에게 안긴 선물은 준우승 세 번이 전부다. ‘(전문 캐디가 아닌) 아빠가 캐디를 해서 우승을 못 하는 것’이라는 주위의 핀잔도 들려왔다.
하지만 최운정은 이날 우승의 공을 아버지에게 돌렸다. 딸은 “오늘 아빠가 옆에서 ‘참고 기다리라’며 조급해하지 않도록 도와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LPGA 홈페이지도 ‘부녀콤비’ 최운정과 최지연씨가 함께 샷을 구상하는 모습이 실렸다.
한편 최운정은 2011년부터 꾸준히 뒷바라지해 준 후원사 볼빅의 오렌지색 볼을 사용하고, 오렌지색 옷을 즐겨 입어 ‘오렌지 걸’로 통한다. 최운정은 “미국에 건너간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큰 도움을 받았다”며 문경안 볼빅 회장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이날 최운정이 우승을 추가하면서 한국 선수들은 올해 LPGA 투어에서 11승을 합작하게 됐다. 이는 2006년과 2009년에 세운 한국 선수 최다승 기록과 동률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한국 가족 문화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역시 지난주 US오픈을 제패한 전인지(21ㆍ하이트진로)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도 부모님의 희생이 그를 천재 골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아버지 전종진(56)씨와 어머니 김은희(51)씨는 사업 실패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딸의 뒷바라지에 헌신적으로 매달렸다.
19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조윤지(24ㆍ하이원리조트) 역시 최운정만큼이나 긴 세월 우승을 기다렸다. 조윤지는 5년 간 이어진 ‘무승’의 세월을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 가족 덕택에 버틸 수 있었다. 프로야구 전 삼성 감독 대행인 아버지 조창수(66)씨와 여자 프로배구 GS칼텍스 사령탑이었던 어머니 조혜정(62)씨는 늘 조윤지에게 “행복한 골퍼가 되라”고 응원했다. 조윤지는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부모님 말씀처럼 마음을 비우고 임해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9개를 낚는 신공을 펼쳐 우승을 거뒀다. 조윤지는 우승컵을 차지한 후 “이렇게까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분들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며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